보재선생 100주기를 기념하는 다양한 숭모사업 추진 계획을 밝히는 송기섭 진천군수.
ⓒ조항원기자
[충북일보=진천] 근대수학의 선구자이면서 독립운동가인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1870∼1917) 선생이 2일 순국한지 100주기를 맞았다.
진천군과 선생 기념사업회는 조국 독립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하고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숭모사업을 추진한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보재 선생은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하고 최초 정통령을 지내며 항일무장투쟁의 기틀을 닦은 투철한 사상가이며 중국 용정에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 민족계몽 운동에 힘쓴 민족 교육자였다··며 "이처럼 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는데도, 유언에 따라 유품과 유고가 모두 소각되면서 사료가 부족해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송 군수는 "독립운동사의 대부로 조국 독립을 위해 불꽃처럼 투쟁을 벌인 선생의 항일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다양한 숭모사업을 추진한다"며 ··이를 위해 오는 4월 21∼22일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 있는 숭렬사, 화랑관, 조명희 문학관 등에서 100주기 추모행사를 대대적으로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헤이그 밀사 사건'의 주역인 보재 이상설(1870~1917) 선생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이준, 이위종 열사와 함께 국권 회복을 국제 여론에 호소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부당하다는 것을 해외 만방에 알리고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함이었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이상설 선생은 독립운동에 전념하며 많은 우국지사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의 동양평화주의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극찬할 정도였다. 이상설 선생은 조선과 중국, 일본이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동양평화론을 바탕으로 애국계몽과 항일독립, 민족주체 등의 사상을 주창했다. 보재 선생은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났다.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1917년 47살 나이에 타국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는 1971년 숭모비를, 1975년에는 사당인 숭렬사를 각각 건립했다. 해마다 숭렬사에서 추모식을 하고 있다. 그의 고향인 진천에서는 올해 순국 100주년을 추모하는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는 다음달 21일과 22일 선생의 넋을 기리는 기념행사를 연다. 이상설 전국학술대회와 전국 한시 백일장, 시낭송 대회, 학생 미술대회, 이상설 평전 출판기념회 등도 개최해 추모 열기를 고조시킬 계획이다. '보재 이상설 기념관' 건립 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다. 기념관은 진천읍 산척리 선생의 생가(충북도 기념물 77호) 주변에 들어선다. 2만5천125㎡ 부지에 조성되는 이 사업은 총사업비 87억7천만원 중 국비 26억3천만원과 지방비 43억9천만원은 이미 확보했다. 나머지 이상설 기념사업회가 부담하는 17억5천만원은 범국민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2일 사업회를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 승인했다. 진천군은 앞으로 100주년 기념 수학캠프, 다큐멘터리 제작, 해외 자매결연추진 및 기념비 건립 등 다양한 추모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진천군 관계공무원, 진천군의회의원, 유관기관단체, 기념사업회 등 총 24명은 오는 6일부터 11일까지 선생의 대표적 해외 독립운동 주 무대를 찾는다. 방문단은 최초 독립운동 기지였던 중국 밀산시에 선생의 항일투쟁 기념비 건립을 추진한다. 이어 중국 용정시와, 러시아 우수리스크 등지를 방문해 당시 선생의 눈부신 항일 구국 활동을 직접 느낀다.
진천 / 조항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