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빵 할아버지'의 거룩한 용서

2015.02.02 16:35:03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톨스토이-. '크림빵 할아버지'는 용서할 수 없음을 용서했다. 그 마음씨가 거룩하다.

*** 용서의 힘은 아주 크고 강하다

일명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망사건이 해결됐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들의 차분한 대처가 가슴을 더 먹먹하게 하고 있다. 아들을 죽인 피의자를 아버지가 용서했기 때문이다.

'크림빵 할아버지'로 불리는 아버지 강 씨는 피의자 허 씨가 자수한 청주 흥덕경찰서를 찾았다. 그리고 되레 허 씨를 위로했다. 그에게 "(자수를)잘 선택했다. 위로해주러 왔다"고 말했다. 새끼 잃은 어미의 '단장(斷腸)의 아픔'을 참고 이렇게 말했다.

예로부터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사에서 가장 큰 슬픔은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이다. 아버지 강 씨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사건 발생 이후 매일 '단장'의 슬픔을 겪었을 게다. 비명에 간 아들을 그리워하며 고통에 시달렸을 게다.

아버지 강 씨가 겪은 고통의 무게와 크기를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 강 씨가 아들을 죽인 피의자를 용서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 용서의 손길도 먼저 내밀었다. "잡히지 말고 자수하기를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다. 위로받아야 할 자신보다 아들을 죽인 피의자를 더 걱정했다.

그러나 강 씨는 다음날 격분했다. 죄를 뉘우치기보다 변명하는 듯한 허 씨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의 자수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 분노도 잠시였다. 죄를 미워했지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다. 두 번째 용서였다. 성자(聖者)가 따로 없다.

아버지 강 씨의 거룩함은 두 번의 용서를 통해 발현했다. 죄를 짓고도 죄책감을 갖지 않고, 작은 실수에도 갑질을 해대는 삭막한 세상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일 텐데…우리 애는 땅속에 있지만, 그 사람은 이제 고통의 시작"이라며 되레 피의자를 걱정했다. 통 큰 용서였다. 그대로 성자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때론 상처를 주고, 때론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개 내가 남에게 준 상처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 남이 내게 입힌 상처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움과 증오의 마음으로 복수를 생각한다.

그만큼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한 태도로 좀처럼 스며들기 어려운 마음가짐이다. 용서는 실천이다. 심지어 용서는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말로는 다 용서했다고 해놓고도 문득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타인이 내게 한 잘못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다. 용서가 숭고한 의미로 해석되는 까닭도 여기 있다.

용서의 힘은 아주 크고 강하다. 분노, 원한, 증오보다 세다. 용서로 이룰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장발장'은 아주 유명하다. 그 속에서 은식기를 가져간 장발장에 대한 신부의 용서가 가져온 결과는 아주 컸다. 그 어떤 단죄보다 크고 위대했다. 한 마디로 용서의 힘이다.

*** 용서하는 동안 내가 치유 된다

'망각'과 '용서'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하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을 혼동하곤 한다.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망각은 그저 망각일 뿐이다.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원망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단지 기억하지 않을 뿐이다.

용서는 타인에게 지우는 빚도 아니고 멍에도 아니다. 그러니 돌려받아야 할 것도 없다. 용서는 내게 잘못을 저지른 남을 선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덮어주는 행위다. 그로 인해 변하는 것은 나 자신이지 남이 아니다. 용서는 궁극적으로 나를 해방하는 일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실천이 용서다. 결코 잘못을 한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다. 용서를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라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남을 용서하는 동안 내가 먼저 치유되기 때문이다.

'크림빵 할아버지'는 이 시대에 용서가 가지고 있는 힘을 잘 보여줬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했다. 그리고 지금 피의자 허 씨에게 속죄의 기회를 주고 있다. 부디 허 씨가 '용서 받지 못한 자'가 되지 않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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