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선생만큼 청주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생각되는 화가는 많지 않다. 며칠 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운보 선생의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언 그가 떠난 지 20년이 지났다. 반가운 마음에 곧장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맨 먼저 눈에 익은 그림이 들어왔다. 입구도 아닌, 안쪽에 있던 대형 작품 '군마도(1956)'다. 주인은 가고 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조선의 은은한 문인화를 보는 듯, 우직한 인상의 그를 보는 듯, 시대 미술에 도전하는 듯한 그림들. 전시작들은 1930년부터 1990년까지 106점이다. 적지 않은 작품들로 운보 작품 99점과 아내 박래향의 6점, 부부 합작 1점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소리를 듣지 못한 후 어머니를 따라 처음 김은호 화백에게서 배웠던 전통 한국화에서부터 광복 이후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했던 운보의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다 알다시피 그는 후천적 장애로 평생을 살았던 화가다.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말도 어눌하기에 타인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던 남자. 그럼에도 쾌활하고 소탈했던 선생을 생각하면 솔직히 그림 이전에 인간적으로 늘 안타깝고 안쓰러운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고 그 감정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선지 모르겠다. 오늘 운보 선생의 작품을 보면서 전문적 미술 시선보다 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담담히 바라보면서 이해하고 소통하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에 다가온 '바보 산수'라는 제목은 어찌 보면 울컥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진짜 바보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눈짓하는 것 같았다. 왜 '바보 산수'라 했을까. 자신의 아내가 떠나고 운명을 외로워해서일까. 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운명을 탓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골진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운보는 "이 작품에 대해 나는 작가정신이 어린이가 되지 못하면 그 예술은 결국 죽은 것이라는 예술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는 예술성을 기술보다는 화가 자신의 순수, 즉 정신세계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림을 보다 보니 그는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살다 간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산은 온통 초록빛 세상, 나무도 없는데 아래는 조선의 시골 풍경으로 복장도 소를 타는 여유로운 모습과 시냇물 등이 있고 전체 분위기는 그저 초록빛 세상 속 여유롭고 넉넉한 한마디로 평화롭고 순수해 보이는 세상이다. 어쩌면 그가 지향한 세상은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욕심없는 동심의 세상을 꿈꾸며 아니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고 그가 조선인에 머문 건 또 아니지 싶다. 조선인 다운 정신으로 미래 지향적 그림을 시도했던 현대 화가였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생각지 못한 작품에서 다시 새로운 그의 모습을 보았다. 제목이 '수태고지', 죄 없는 사람은 돌을 던져라' 등이다. 가만 보니 성경 이야기 같은데 성경 속 장면을 한국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옛것을 존중하되 어떻게 하면 현대적 해석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고심했던 흔적이다. 방법으로 그림에 복장 배경 인물을 모두 조선시대 복장으로 변환했다. 그런가 하면 '노점'이란 작품은 광복 이후 묵 위주에서 물감 색을 넣은 새로운 화풍으로 전통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려 얼마나 고심하며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그의 결정적 흔적으로 보인다.
누구나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운보가 남긴 흔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내게 진정한 바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린 바보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린 그의 그림에 나타났듯 존재를 중시하는 삶이 아니라 소유를 중시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새와 다람쥐와 부엉이를 바라보던 운보의 따듯한 시선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