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고백

2024.01.17 14:56:10

홍성란

수필가

집이 거꾸로 서 있고 작품 한가운데 사람과 강아지가 둥둥 떠다닌다. 그런가 하면 새 나무 아래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다. 서양화가 '장욱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독특한 형상들로 그의 그림 세계에 자주 등장한다. 그가 세상 떠난 지 30년이 지난 가을, 덕수궁 미술관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장욱진 회고전'이 열렸다.

네 군데 공간에 상당히 많은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60년간 화가로, 한 인간으로서의 긴 이야기를 관객에게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작고 소박한 작품만큼이나 생전 모습도 소박해 보인다. 평생을 밥 먹듯 그림을 그렸을 만큼 그리기를 좋아했던 젊은 시절이 있는가 하면 쪼그리고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중년의 남자도 있다. 불교에 심취한 노년의 모습도 보인다. 이런 그의 모습이 여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르다면 생전에 직업이 화가였다는 것인데 전문적 지식 알림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그에게 인생은 무엇이고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세계와 바깥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자신만의 세계란 무언가. 적어도 한 장의 그림, 한 줄의 문장을 보고도 바로 이건 누구의 그림이라는 평이 나온다면 그는 자기 세계를 세운 사람이라고 여기고 싶다. 어찌 보면 그만큼 자신의 표현이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때문에, 예술가들은 그 소통을 위해 수많은 생각과 다양한 구상, 시행착오의 과정을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리라. 왜냐면 예술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개인적인 작업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소통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내가 관심 있게 바라본 점은 그의 그림의 특징인 지속성과 일관성이 어떤 토대로 유지될 수 있었는가이다. 독특한 형상들은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했었다. 작가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원 속에 연결됨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살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새 나무 새 나무 해달 길 논길 하늘 등을 대표적 모티프로 각각의 의미를 품고 등장한다. 즉 까치는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이며 나무는 그의 세상을 품는 우주였고 해와 달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로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임을 반복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그의 소박함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처럼 살고 싶었던 생각과 철학이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그의 생각은 노년에 이르러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더욱 진지해진다. 그림의 표현만으로는 본질에 닿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어서였을까. 생각은 깨달음을 낳고 깨달음은 또 다른 무(無)의 세계를 향한 영혼의 붓질로 이어진다. 이 붓질은 전체 작품의 80%를 차지할 만큼 지속성으로 이어진다. 그의 이런 작업은 '진진묘'에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림을 통해 가장 맑고 깊은 영원의 세계를 향한 기도다. 즉, 그림 그리기도 깨달음의 과정으로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맑은 영혼의 자유로움이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의 진지한 고백을 들으며 이제사 독특한 형상들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것 같다.

진지한 고백을 들으며 드는 생각이 있다.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의 한 방식 중 하나가 고백이 아닐까 싶다. 고백이란 게 꼭 거창하거나 비밀스러워야 할 이유도 없지 싶다. 사실 당당하고 솔직하고 진지하다면 방식이 무에 큰 문제겠는가. 어찌 보면 소통이란 것도 누군가의 작은 고백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작은 몸짓, 다정한 손짓, 밝은 미소, 고맙다 미안하다는 문자 하나 그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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