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길

2018.06.24 15:56:56

홍성란

수필가

유명 셰프 세분이 연예인 호스트(host)가 만든 음식을 함께 만드는 요리프로다. 연예인이면서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그녀는 자신만의 맛을 내기 위해 몇 십 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오늘의 밥반찬 요리는 '고사리 굴비조림'. 재료가 소개된다. 보리굴비 10마리, 삶은 고사리 1kg, 국간장 1Ts, 마늘 3Ts, 양파 1개, 홍고추 2개, 대파 2개, 고춧가루 등등. 낯익은 재료들이다. 소금에 절여진 짭쪼롬한 굴비, 육지가 고향인 대파, 마늘, 고추, 산에서 내려온 고사리가 모였다. 

조리실은 재료 다듬는 소리, 똑똑 파 써는 소리, 물 끓는 소리, 이어 모든 재료들이 불 위 냄비에서 뭉근하게 자작자작 졸여진다. 채소의 붉고 푸른 색깔, 쫀득한 굴비의 맛, 향긋한 고사리냄새까지 식욕을 일으키는 색과 맛이 어우러져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돋는다. 호스트(host)인 그녀가 셰프들이 만든 요리를 일일이 맛본다. 과연 같은 조건 같은 요리를 만들었는데 세 셰프의 맛은 같았을까?

다른 사물과 어울리면서 원래의 내 모습 내 향기를 간직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오묘한 일인가. 이 오묘한 맛의 변화를 잘 이끌어 내는 사람을 흔히 요리사라고 말한다. 요리사를 영어로는 cook이라고 하는데 이 cook은 단순히 요리하는 사람이란 의미이기 때문에 뜻의 범위가 넓다. 따라서 분식집에서 라면 끓여 주는 사람도, 호텔의 요리사도 요리사이다. 그러나 차별을 두기 위해 요리 전 분야에 조예가 깊은 수석요리사를 셰프(chef)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30년간 분식집에서 일한 할머니도, 평생 부엌에서 요리를 하신 이 땅의 어머니들 또한 엄연한 요리사임에는 틀림없다. 셰프를 결정하는 기준이 학력, 직장, 음식의 종류가 아니라 경륜이기 때문이다.  

경륜은 어떻게 쌓이는가. 요리재료를 통해 사물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어우러짐 속에서 이뤄지는 화학과 감각의 모험을 오랫동안 익히는 것일 게다. 한마디로 지식이나 기술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요리를 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어려웠던 어머니 시대에서는 무엇 하나 풍부한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어머니는 주로 푸성귀로 반찬을 하셨고 특별한 날에나 기르던 닭을 내놓았던 것 같다. 외식이 있을 리 없고 주어진 조건, 주어진 상황에서 있는 재료로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드셨다. 감자 한 알, 무 한 개를 가지고도 어떻게 이 재료를 드러내고 어떻게 하면 잘 어우러질까를 생각하셨던 요리사. 어머니는 그 융합의 철학을 음식을 통해 터득하고 경륜을 쌓으셨던 건 아닐까.  

어떤 분야든 전문이 되려면 10년을 기본으로 오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아는 미용사의 말로는 이론자격증은 몇 달만 열심 공부하면 딸 수는 있지만 현장에서 늘 막힌단다. 그만큼 현장에서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일 게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래시피(resepi)만 있으면 음식을 만들 수는 있지만 재료가 갖고 있는 본래의 맛과 향을 살려 내기는 쉽지 않다. 비슷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깊은 맛을 단시간에 내기는 어려우리라. 왜 그렇겠는가. 누군가가 수 십 수 백 번의 실험을 거쳐 요리법을 엮은 것이다. 그만의 맛을 똑 같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창성은 모방에서 시작한다고 하지 않던가. 

식탁의 길은 인생길이다. 인생에 정해진 법이 없듯 요리 또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만의 맛으로 행복의 식탁을 꿈꾸고 희망한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 인생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보람된 삶, 좀 더 맛난 삶을 식탁에 올리기 위해 오랫동안 도전과 모험을 하는지 모른다.

좀 더 깊고 융숭하게 좀 더 여럿이 나누고 베푸는 삶을 희망하며. 그것이 진정한 식탁의 길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서로의 요리를 나누는 출연자들의 모습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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