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자세다. 그래서일까 '자화상' 하면 제일 먼저 빼딱한 그를 떠올리게 된다. 에곤 실레(1890~1918)다. 그의 원작이 작년 11월, 한국에 왔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이란 타이틀로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미술관과 중앙박물관이 주최한 전시에서 그를 만났다. 10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삐딱한 자세로 상대를 쏘아보는 듯한 청년 실레.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천재 화가 그가 알고 싶었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앞이다. 검은 상의에 삐딱한 자세, 쏘아보는 듯한 자신감과 호기심 어린 시선이 압권이다. 게다가 특이한 건 자화상에 꽈리 열매를 넣었다. 마치 열매와 인간의 생이 연결된 것 같은 궁금증을 일으킨다. 왜냐면 꽈리는 동양적 해석으로는 꽈리를 불면 꽈리 소리에 귀신이 도망간다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자화상에 엉켜 있는 불안과 고뇌는 우리에게 무얼 말하려 하는 걸까.
혹자는 근긴장이상증으로 인한 빼딱함으로 보았지만 그보단 젊은 실레의 고뇌의 표현 아니었을까 싶다. 흔히 사람들은 에곤 실레가 성(性)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누드를 그린 이유로 가정사를 언급한다. 실레는 어렸을 때 이상한 아이로 여겨질 정도로 내성적이고 지독한 나르시스트였다. 매독으로 사망한 아버지, 아버지에 무심했던 어머니, 여동생에 대한 과도한 집착 등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 「어머니와 아이」 '어머니와 세 아이'라는 작품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자 관계와 아이를 안으려는 엄마가 부담스러워 놀라는 아이를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애정 결핍의 상처를 안고 살았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여동생에 대한 과도한 집착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한 청년으로 성장한 그가 유별나게 많이 그렸던 누드 드로잉의 대부분도 여성이다. 여기서 그는 굴곡 된 선과 손의 표정에 집중한 것 같다. 정면이 아닌 엎드리고 안고 널브러져 있는 적나라한 여성의 몸과 몸을 안으려는, 쓰다듬으려는 듯한 손의 표정들. 자연히 몸은 구부러지고 시선도 측면이거나 삐딱하다. 그가 성에 지나친 호기심과 욕망에 휩싸였던 걸까. 물론 젊은 실레가 욕망과 성에 깊은 관심이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개인사로 확정 짓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다. 20대, 육체적 정신적 부풀어 오른 젊은 청춘 아닌가. 당시 1900년 전후 유럽에 만연했던 '세기말 증후군'에 편승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즉, 가치관의 혼돈, 전쟁에 대한 공포, 새로운 사고 체계 등장등 그 바탕이 된 대표 도시가 빈이었기에 빈의 청년인 실레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든 결국 실레에게 가장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건 모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장 인상 깊었던 '어머니와 아기'라는 작품에서 나는 그가 사진과 작품에서 한결같았던 포즈의 연원을 생각했다. 실레는 자신의 모성 결핍과 이로 인한 정체성에 고뇌했던 것 같다. 뿌리가 어머니의 사랑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성이야말로 세상을 여는 서정시요, 모든 생명에게 세상을 향한 첫 문이었다. 실레는 그 문을 그림을 통해 열었고 채워지지 않는 모성을 떨치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자화상을 미술사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승 클림트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모성의 결핍은 가장 오랫동안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실레는 마냥 아픔을 붙잡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자화상이 감동을 주는 이유다. 실레의 자화상에서 내 젊은 날과 지금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과연 모든 젊음이 지나간 지금,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걸까. 사랑한다면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