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평평(蕩蕩平平)

2024.02.15 16:49:51

홍성란

수필가

삽살개가 이빨을 드러낸 채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2024년,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개최되고 있는 '탕탕평평(蕩蕩平平)' 특별전 포스터다. 화가 김두량의 '삽살개'인데 그림에 영조의 시 어제가 실려 있다.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네가 맡은 임무이거늘 어찌하여 대낮 길에서 짖고 있느냐"며 꾸짖는다. 삽살개가 알아들을 리 없건만 영조는 누구를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영조(재위1724~1776)와 정조(재위1776~1800)의 대표 정책은 '탕평'이다. 알다시피 붕당의 회오리에 휘말렸던 왕들이다. 때문에, 불리한 상황에서 왕이 되었고, 원인이었던 붕당의 폐해를 뼈저리게 겪은 당사자들로서 어떻게든 굳건한 왕권을 세워 '탕평한 세상'을 실현하려 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음식에도 침전에도 '탕평'이란 글자가 들어갔을까. 이번 전시는 그분들의 업적을 치켜세우자는 게 아닌, 탕평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글과 그림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다시 보자는 전시다.

영조와 정조가 남긴 다수의 어필 어찰 어제 등이 걸려 있다. 두 임금의 의도를 반영해 제작된 궁중 행사도 등 18세기 궁중 서화의 화려한 품격과 장중함을 대표하는 '화성원행도'를 비롯 88점의 작품도 오랜만에 나왔다. 그중에서 '삽살개'와 '장주묘암도'는 탕평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영조의 뜻이 담겼다. 특히 '장주묘암도'는 탕평을 반대한 신하 '윤급'에게 글씨를 쓰도록 해서 자신의 의지를 알리려 했을 만큼 절절함이 느껴진다.

은유적 표현을 즐겼던 영조에 비해 손자인 정조의 소통방식은 좀 더 정답고 적극적으로 보여진다. 정조가 직접 쓴 시, 편지글이 많았고 유난히 많은 '홍재'라는 장서인(藏書印)도 인상 깊다. 또 정승 심환지와 주고받은 297통의 편지글 '정조어찰첩(正祖御札牒)'에서 정조가 사람과의 소통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느끼게 한다. 그 외에도 '자시의도', '정조어필' '홍재전서' 등에는 탕평의 핵심 조건인 황극(皇極)탕평을 분명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전시의 백미는 장서인(藏書印)에 박혀 있는 '탕탕평평평 탕탕'에 있다. 얼핏 보면 '탕평평탕'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탕자 밑에, 평자 밑에 자가 있는데 그게 반복 부호다. 그렇게 읽으면 '탕탕평평평평'이 된다. 정조가 얼마나 탕평에 목이 말라 있었으면 그렇게 '탕탕평평평평 탕탕'을 반복했을까.

'탕탕평평' 소리 내어 읽어본다. 경쾌하고, 뭔가 탁 트이는 느낌이다. 경쾌한 소리처럼 사람들은 '탕평' 세상을 원하고 꿈꾼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이리저리 치우치고 일어섰다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왜 꿈과 현실은 어긋나기만 하는가. 여기엔 인간의 두 모순이 등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론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외치지만 여차하면 내면에선 누군가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어서 그렇다. 이때 권력자는 어떻게 이 기우는 운동장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에 고뇌한다.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명분으로 나라를 다스릴까. 영조와 정조가 내세운 명분이 바로 탕평이고 글과 그림은 두 군주에게 힘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글과 그림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그런 만큼 이번 전시가 내게 새롭게 건넨 건, 단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다. 즉, 인간의 삶, 사고, 인간다움, 근원에 대한 탐구다. 아무리 강한 권력도 사람에 대한 공부가 되지 않았을 때 역사는 냉혹하게 내쳤다. 그게 힘이기 때문이다.

'탕평'도 그렇다. 그나마 탕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두 군주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이 쌓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역시 힘이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실력, 그게 인문학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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