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화면에 멕시코 리오그란데강을 건너 미국으로 향하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 행렬이 보인다. 깊은 강물을 건너는 모습이 위태롭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는 철벽이 가로막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크고 아름다운 장벽을 만들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큰 장벽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아름다운 장벽을 만들 수 있을까.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을 한다 해도 그 벽이 아름다울 것 같진 않다. 길은 열려있을 때 아름답다.
그녀가 담을 넘고 있다
긁힌 얼굴은 피로 가득하다
햇살이 부신 창을 던져 허리를 찔러도
빗줄기가 축축한 손으로 머리채를 휘감아도
허공을 온몸으로 들어 올리며
입술을 깨문 채 넘고 있다
어디선가 Donde Voy가 흘러나온다
지나던 바람이 손을 내밀자
바람의 등을 타고 길을 나서는 그녀
붉은 몸을 펼쳐 단 한 번 날갯짓으로
추락을 가장한 비상을 한다
몸이 퍼즐 조각처럼 바닥에 흩어지고
그녀를 태운 발소리들이 멀어진다
담장엔 소문이 무성하게 가시를 세우고
떠나지 못한 장미들의 모의가 몽글몽글 피어난다
그녀는 지금쯤 누군가의 신발에 묻어
사사베* 국경을 건너고 있겠다
* 멕시코 소노라 주 사사베에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멕시코 난민들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거대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이 있다
─ 김나비, 「히치하이킹」 전문 (시집 나비질, 시산맥사 2023)
히치하이킹(Hitchhiking)은 목적지를 가기 위해 모르는 이의 차량 등을 얻어타는 것을 말한다. 시는 꿈의 땅으로 가기 위해 죽음을 감수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다. 시적 상황은 암울하다. '긁힌 얼굴은 피로 가득하고' '햇살이 부신 창을 던져 허리를' 찌르고 '빗줄기가 축축한 손으로 머리채를' 휘감는다. 담을 넘던 여인은 결국 '추락'하고 몸은 '퍼즐 조각처럼 바닥에' 흩어진다. 여인은 물리적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시가 이야기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희망을 향한 '비상(飛上)'이다. 여인은 죽고 '소문이 무성하게 가시를' 세우지만, 희망을 품은 이들의 꿈은 여전히 '몽글몽글 피어난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사베 국경을 건너고 있는' 또 다른 이의 희망과 함께 그들의 '신발에 묻어' 끝내 국경을 넘는 것이다. 시는 세계의 슬픈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인간의 희망과 사랑을 버리지 않는다.
시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Donde Voy'는 멕시코계 미국가수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가 1989년에 발표한 스페인어 노래다. 제목은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뜻이다. 내용은 불법 이민을 시도하는 자가 고향에 남겨둔 자기 연인을 그리는 노래다. 가사 중에 '희망은 나의 운명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운명(destinacion)은 목적지라는 의미를 품는다. 담을 넘으려고 한다는 건 초월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말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음을 초월할 때 또 다른 삶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쓸쓸한 난민 여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시인은 죽음마저도 막을 수 없는 '희망의 초월성'을 노래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고귀함과 서로 간의 연대 그리고 사랑을 강조한다.
미국-멕시코 사이의 철벽은 일편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유리 벽을 의미한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벽, 타인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투명한 벽 말이다. 매년 전쟁, 내란, 기아, 기근, 질병, 인종차별 등으로 많은 난민이 발생한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심화할 수 있다. 인간 사이의 벽을 부수고 길을 내는 것이 옳지 않은가.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사람 아닌가. 그들에게 강력한 희망의 빛이 비치길 기원하는 시인의 메시지가 고요한 밤을 흔들며 파동치듯 번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