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오랜만에 근처의 상당공원에 들렀다. 공원은 정리가 잘 되어 있었고, 조경에도 신경을 쓴 듯 깨끗했다. 벤치에는 몇몇 노인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호탕한 웃음이 풍선처럼 푸른 하늘로 날아갔다.
발길을 옮기자 '충북 4.19 학생 혁명 기념탑'이 보였다. 기념탑 건립 취지문에는 당시 참여했던 학생들이 다녔던 충북 내 대학교와 고등학교 명칭 그리고 당시의 상황이 적혀 있었다. 기념탑은 4.19가 오십 년이 지난 2010년도에 건립되었다.
새소리가 들리는 기념탑 앞에 서서 대학 시절에 필사했던 김수영 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푸른 하늘을」 전문, 김수영
이 시는 시인이 4.19 혁명 직후에 쓴 시다. 유월에 탈고하였으니 두 달간의 깊은 사유가 반영되었으리라.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를 흔든 것은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하는 마지막 구절이었다. 무엇일까? 그의 고독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내가 그의 시 세계에 심취해 있을 즈음,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역사는 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늘의 노고지리가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것은, 생존을 위한 먹이를 찾아야 하고 자연과 천적 혹은 동족으로부터 자신과 새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까닭이다. 자유(Liberty)는 자연상태에서 그것을 누리는 것과 함께 자신의 의지로 억압을 막고, 자신의 권리와 다른 이의 권리까지도 고려하는 적극적 의미를 품고 있다. 그가 이 시를 쓴지 20년 후, 한국은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다시금 경험해야 했다.
혁명이란 '기존의 어떤 틀을 깨고 급격히 새로운 틀을 세우는 일'이다. 변화를 시도하는 주체는 자신 스스로가 변화에 대한 전망, 비전 그리고 계획이 있어야 하며, 다른 이를 설득하여 행동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시인은 혁명이 '고독'해야 함을 말한다. 고독은 혼자 스스로 분리되어 있거나, 타자에 의해 고립된 상태가 되었을 때 느끼는 심리이다. 전자의 경우는 '독립된 자유로움에서 오는 창조 심리'이고 후자의 경우는 '자유로움의 상실에 의한 억압심리'이다. 하지만 양자 모두 '고통과 불편함'을 수반한다. 그가 혁명이 고독하다고 한 이유는 '자유의 쟁취와 그 지속을 위한 고통과 불편함' 때문 아니었을까· 그 고통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가 혁명을 이룰 수 있고, 마땅히 그런 자가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내년 삼월에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공원을 나오면서 나는 '혹시 우리가 무엇인가 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한다. 분명 우리는 또 하나의 과도기로 가는 중이다. 진정한 '창조와 억압의 고독'을 되새김할 때 또한 우리 스스로 '고통과 불편함'을 감수할 때, 그리하여 자신과 남의 권리를 존중할 줄 아는 자유가 어떤 것인지 몸으로 깨닫고 그것을 행할 때, 진정한 의미의 성숙한 혁명이 달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서 촛불혁명을 자세히 소개할 만큼 우리의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는 성숙해졌다. 푸르게 번져가는 사월의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새가 되어 날아야 한다. 올해는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의 해다. 그가 얻기 위해 고독하게 싸웠던 '발가벗은 자유와 정직'의 잣대 위에 나 자신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