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광년 전의 빛이 화면에서 쏟아진다. 최근 나사에서 쏴 올린 제임스웹 망원경이 보낸 사진이다. 용골 성운(Carina Nebula)의 먼지구름 속에서 아기별이 제트를 뿜으며 탄생하고 있다. '우주 절벽, 달빛이 비치는 저녁의 험준한 산'이라는 나사의 표현대로 황량한 사막산과 절벽이 어둠에 떠있다. 거대한 우주와 지구는 닮았다. 도대체 우주는 무엇일까. 그 끝은 어디일까.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외계행성을 노래한 듯한 느낌을 주는 시다. 나는 시인이 만든 또 다른 우주에 조용히 도킹한다.
눈을 떠 봐, 보이지.
멀리 서북쪽
새벽에 눈 뜨는 오로도스인들의
재갈 물린 별
들리지? 천산산맥에서
음산산맥까지는
너무 멀어서
천체에서 반짝이는 새소리와
낮은 처마 밑을 흘러가듯 짤랑이는 말방울 소리.
보이지, 아득한 목초지와 사막.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는
6000억 광년쯤 저쪽
새벽별, 눈을 비비고 봐.
보이지? 보이지?
―조명제, 「화류장」 전문
고가구를 소재로 쓴 시다. 화류장(樺榴欌)은 황실이나, 대감집, 부잣집에서 사용했던 최고급 가구다. 붉은색의 단단한 재질로,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 화류목으로 만든다. 가구를 보며 시인은 다른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가구에 그어진 엷고 짙은 무늬의 굴곡과 음영 그리고 연속적인 결은 시인의 불꽃 튀는 상상에 따라 살아 움직이며 시적 공간을 연출한다.
'보인다'는 건 사물과 대상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눈을 떠봐, 보이지'라는 첫 행의 물음은 시인이 대상 자체를 묘사한 게 아니라, '상상과 감각 체계로 인식한 것'을 표현했다는 걸 암시한다. 눈을 떠보라는 청유는 마음을 열고 존재 너머의 것을 응시하라는 의미다. 시인은 어떤 세계를 조형한 걸까.
붉은 결의 무늬는 몽골의 '천산산맥과 인산산맥'을 이루며 아시아의 동쪽에서 서쪽 끝으로 달려 나간다. 산정 위에는 '600억 광년을 달려온 새벽별'이 떠있다. 그 아래 사는 '오로도스인은 천체에서 반짝거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방울 소리 짤랑이는' 말을 끌고 삶의 터전인 '목초지'와 고비,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간다. 어쩌면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으로 갔으리라.
시는 역동적인 지구 행성의 경험과 기억을 환기하고 상상의 옛 땅에 닿게 한다. 시인 앞에 놓인 화류장은 가구가 아니라 작은 우주다. 그 안에서 시인은 사람과 함께한 지리와 역사의 흔적, 시간 속에서 빛나는 행성의 어느 연대기를 이야기하며 빛을 밝힌다. 붉은 나뭇결 속의 우주, 거시적 세계와 미시적 세계가 가진 동질의 경이로움. 시에는 두 세계가 공존하며 궁극적으로 '우주의 일부인 인간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다. '미학은 미를 창조하거나 감상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이 둘의 정신적 상태와 자세에 깊은 관심을 지닌 사람의 것'이라는 하르트만 (Nicolai Hartmann)의 말이 생각난다.
빛을 받은 사물들이 반짝인다. 가만히 바라보라. 6천억 광년을 달려온 별빛이 보이지 않는가. 그 빛은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어두운 눈을 비벼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작은 사물의 기적' 말이다.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별이 슬며시 재갈을 푼다. 생성과 소멸의 우주에 선을 긋는 또 하나의 빛 그리고 균열과 합치를 반복하는 사물의 움직임. 눈을 뜨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는다. 말방울 소리가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