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8월 14일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내란음모사건' 첫 공판을 받고 있는 모습(사진 위) 이후 1981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뒤 수형번호 '9'를 달고 다음해 12월 16일까지 머물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은 직후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전담(감시)팀장으로 근무했던 강복기씨(67.교정공무원 퇴임).
"어려운 수감생활도 의연하게 견딜 만큼 의지가 강한 분이셨는데 이렇게 서거하셨다니 안타깝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1년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전담교도관으로 근무했던 강복기(사진·67·청주시 흥덕구 분평동) 전 청주교도소 서무과장은 그의 서거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
강씨가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981년 1월.
김 전 대통령은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죄로 그 해 1월 23일 사형을 선고받고 31일 청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81년 12월 23일 석방되기 전까지 교도소 8사(舍) 2호실의 1.742평 독방에서 1년 10개월간을 보냈다.
시국사건 수형자들에게 정통하다는 내부평가를 받던 강씨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을 전담했다.
강씨는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고문 후유증인 고관절과 허리 디스크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외부인은 물론 수감자와 철저히 통제된 채 생활하던 김 전 대통령은 독서와 기도로 평상심을 유지하며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혹독한 수형 생활을 견딘 김 전 대통령은 출소하며 미안해하는 직원들을 오히려 격려해 줘 주위를 숙연케했다고 강씨는 말했다.
2000년 12월 청와대로부터 스웨던 오슬로에서 열리는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강씨는 18년 만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강씨는 "대통령께서 수상식에 저를 초대해주셨다는 얘기를 듣고 감개무량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서거하셨다는 말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면서 "한번 찾아뵀어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