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와 벼슬

2024.09.01 14:32:25

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수십 권의 시집을 이미 간행하셨다고요? 참, 대단하십니다. 수많은 문학상을 받으신 바 있다고요? 참, 훌륭하십니다. 거국적인 큰 문학단체의 장이었다고요? 참, 위대하십니다. 80이 넘은 문단의 원로 시인이라고요?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참 시인은 작품의 분량이나, 수상의 경력이나, 감투의 관록이나, 등단의 이력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가 참 시인인가요? 불의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지사인가요? 세상을 등지고 고고하게 살아가는 은자인가요? 지사도 은자도 참 시인의 요건은 아닙니다. 참 시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시에만 매달린 순진하고 멍청한 시쟁이입니다. 시를 생각하느라 끼니를 잊기도 하고 시를 엮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하지만 세상이 알아주기를 크게 바라지 않고 세상이 몰라봐도 크게 낙심하지 않는, 한평생 한 편의 명품을 벼리기 위해 더운 영혼을 쏟는 시의 대장장이, 시의 구도자(求道者)입니다.'

충북대 교수를 역임한 임보 시인의 작품입니다. 위의 작품을 읽다 보면 문단의 풍조를 두고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울림도 크고요.

올해 초, 한국소설가협회의 임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사장과 부이사장, 이사를 뽑는 선거였는데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회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달렸습니다. 평소 그다지 교류가 없던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애원을 편지로, 문자메시지로, 카톡으로 시도 때도 없이 보내오며 괴롭혔던 것입니다.

정말 시도 때도 없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습니다. 낮시간에 보내도 될 것을 굳이 자정을 넘긴 시각에, 한창 잠에 빠져 있을 새벽 시간에 보내오는 데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습니다.

출마한 인사들 가운데는 생소한 이름도 몇 눈에 띄더군요. 면면이 궁금해 그들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 읽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전국적인 문학단체의 임원을 하기에는 작품 수준이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습작 수준에 가까운 작품까지 눈에 띄더군요. 자신의 작품 수준을 올리기 위한 노력이나 할 일이지 분수없이 선거판에 뛰어들어 어쭙잖게 감투나 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정치권을 돌아봅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 줄을 잘 서 당선이라는 행운을 잡은 처지인데도 함량 미달인 자신을 망각하고는 매사에 앞장을 서며 기고만장해 날뛰거나 세 치 혀를 함부로 나불댑니다.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선뜻 떠오르는 인사가 있을 것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여 놓고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시침을 뚝 뗀 채 또 다른 허위 사실을 퍼 나르며 면책특권 운운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울분이 솟습니다. 당장 멱살을 잡아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각설하고, 어쨌거나 정해진 일정대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소설가협회의 선거가 끝났습니다. 바라건대 당선된 인사들은 정치권을 교훈 삼아 비록 자신이 함량 미달일지라도 엉뚱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아 주어진 책임과 의무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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