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핀잔

2020.09.14 14:43:21

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어느 일요일 아침, 아내와 함께 새벽미사에 참석하고 돌아와 주차를 하는데 같은 통로에 사는 젊은이가 자신의 차량문을 활짝 열고 내부를 정리하다 인사를 하더군요.

"왜 어딜 가시게?"

어릴 때부터 보아온 친구입니다. 원래는 부모와 함께 살았는데 아들이 결혼하자 부모는 자식에게 집을 물려주고는 공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났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젊은이입니다. 씩씩하고 시원시원하기까지 합니다.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자식을 셋이나 두었습니다. 딸 둘에다 아들 하나인데 모두 건강하고 귀엽기에 만날 때마다 알은체를 하곤 합니다.

"예. 애들 데리고 화양동이나 다녀올까 해서요."

참으로 열심히 산다고 칭찬을 했어야 하는데 그만 헛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미세먼지가 괜찮으려나?"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아내가 기어코 한 마디를 하더군요.

"아유, 말씀 좀 조심하시지. 편히 쉬고 싶은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시원한 계곡을 다녀오려는 착한 사람인데 격려나 해 주지."

아내는 때때로 그렇게 핀잔을 줍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언행을 자제하라고, 가능하면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말만 골라서 하라고 핀잔을 줍니다. 필자가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간섭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지체없이 옆구리를 찌릅니다. 잔소리라는 경고인 거죠.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핀잔의 출발점입니다. 당연히 필자는 움찔해 말투를 가다듬으며 화제를 돌리기 마련입니다.

운전을 할 때에도 아내의 핀잔은 자주 날아듭니다.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자나 지켜야 할 교통규칙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를 만났을 때 저절로 나가게 되는 욕설을 두고서입니다.

"지금 그 욕설을 듣는 사람은 옆자리의 나밖에 없어요. 나이 든 분이 그렇게 거친 말을…"

품위 유지를 요구하는 충고이기에 태도는 저절로 다소곳해지고 입도 순화되기 마련입니다. 야구경기를 시청하며 흥분을 할 때에도 예외 없이 핀잔은 날아듭니다.

"즐기세요.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해야지. 누군 잘 던지고 잘 때리고 잘 달리고 싶지 않나요· 세상사가 마음대로만 되면 정말 살만 하게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옳기에 열에 들떠 던지던 험구는 자연스럽게 잦아들기 마련입니다. 농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태우려다 크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자고 오는 곳을 그렇게 오염시키고 싶어요? 밖으로 들고 나가 분리수거를 하면 되는데 그게 귀찮아서 태워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입게 되는데…."

산 속이어서, 보는 사람이 없어서, 슬그머니 태우고 싶었던 것인데 여지없이 건너오는 핀잔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아내는 집에서 사용한 분리수거용 일회용품을 버릴 때에도 반드시 물로 깨끗이 세척해 버립니다. 홍보 영상에서 권고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지요.

아내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어느 새 4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결혼할 때 미처 전세자금도 준비하지 못했던 남편을 만나 그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오면서 집을 마련하고 세간을 마련하고 자식을 성장시키고 남편까지 뒷바라지한 아내입니다.

잔소리에도 듣기 좋은 잔소리가 있음을 아내를 통해 알았습니다. 아내의 핀잔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때때로 그 핀잔이 듣기 싫어 다투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길잡이가 되기에 벌침처럼 톡 쏘는 촌철살인과 같은 지적은 지금도 매우 유용합니다. 필자가 팔불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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