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에

2020.08.24 17:50:42

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태어남은 하나의 약속이다. 나무로 태어남은 한여름에 한껏 물오른 가지로 푸르름을 뿜어내리라는 약속이고, 꽃으로 태어남은 흐드러지게 활짝 피어 그 화려함으로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하리라는 약속이고, 짐승으로 태어남은 그 우직한 본능으로 생명의 규율을 지키리라는 약속이다. 작은 풀 한 포기, 생쥐 한 마리, 풀벌레 한 마리도 그 태어남은 이 우주 신비의 생명의 고리를 잇는 소중한 약속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남은 가장 큰 약속이고 축복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날 가능성이야말로 넓은 들판 가득히 콩알을 펼쳐 놓고 하늘 꼭대기에서 바늘 한 개를 떨어뜨려 콩 한 알에 박히는 확률과 같다고 한다. 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태어나는 우리의 생명은 그러면 무엇을 약속함인가. 다른 생명과 달리 우리의 태어남은 생각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약속이다. 미움 끝에 용서할 줄 알고, 비판 끝에 이해할 줄 알고, 질시 끝에 사랑할 줄 아는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일은 이 약속을 지켜 가는 일이다. 괴물같이 어둡고 무서운 이 세상에 빛 동그라미들을 만들며 생명의 약속을 지켜 가는 일이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며 동물을 만드셨을 때, 새는 원래 날개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새가 하느님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다른 동물은 다 특별한 무기가 있습니다. 뱀은 독을 갖고 있고, 사자는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고, 하다못해 당나귀는 뒷발차기라도 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느님이 곰곰이 생각하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새에게 날개를 주셨고, 새는 매일 그 날개를 등에 메고 힘겹게 걸어 다녔습니다.

'내게 좋은 걸 주신다더니 짐만 주셨구나.'

실망한 새는 다시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하느님, 날개를 달고 다니기가 너무 무겁습니다. 차라리 도로 떼어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새야, 네가 소중하고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구나. 날개를 퍼덕여서 하늘로 날아올라라. 높은 곳에서 만나는 자유와 희망을 가져라."

삶은 조각 퍼즐 맞추기 같은 것입니다. 지금 들고 있는 마음의 조각이 여러분 삶의 전체의 그림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습니다.>

<"첫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 주는 것들을 듣기만 했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 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오후에는 오랫동안 숲속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겠습니다. 찬란한 노을을 볼 수 있다면, 그날 밤 아마 나는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날 나는…."

이렇게 이어지는 헬렌 켈러의 사흘간의 '환한 세상 계획표'는 갈증과 열망이 너무나 절절해서 멀쩡히 두 눈 뜨고도 제대로 보지 않고 사는 내게는 차라리 충격이다. 그래서 오늘같이 햇빛 화사한 날 업적 0점짜리 신문 칼럼이나 쓰고 있어도 헬렌 켈러가 꼭 사흘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염원하는 이 세상을 나는 사흘이 아니라 석 달, 3년, 아니 어쩌다 재수 좋으면 아직 30년도 더 볼 수 있으니 내 마음은 백점으로 행복하다.>

위에 소개한 세 토막의 글은 모두, 소아마비로 태어나 생에 대한 불굴의 의지로 대학 교수까지 되었지만, 암을 얻어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의 글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신체로 살고 있음에 저절로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절절한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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