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치사랑

2022.10.10 14:13:30

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어느 젊은 엄마의 고백입니다.

우리 가족은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마치 친척처럼 사이좋게 오순도순 살고 있죠. 어느 일요일 오전, 개구쟁이 막내아들이 이웃의 또래친구들과 함께 집 앞의 좁은 골목에서 공을 차더군요. 좀 불안했습니다. 자칫하면 이웃의 유리창을 깰 수도 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의를 준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쨍그랑하고는 어느 집의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군요. 짚이는 것이 있어 서둘러 내다보니 역시나 우리 아들의 소행이었습니다.

"너, 이 녀석,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앞치마 차림새로 급히 쫓아나가니 아이는 놀란 토끼처럼 꽁지가 빠져라 저 멀리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 어찌합니까? 유리창이 깨진 집을 찾아 정중히 사과를 하고 보상을 약속했지요. 피해를 입은 집도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어 선선히 이해를 하시더군요.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말썽을 일으킨 아들이 날이 저무는데도 몇 시간째 집에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잡히면 꿀밤 몇 대 때리려고 했을 뿐인데. 집안일을 하면서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집근처로 아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한 시간 이상을 헤맸지만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 10시가 넘도록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초조함은 더했지요. 마침 회사에서 특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말한 뒤 함께 좀 더 먼 지역까지 돌아보았지만 아이의 모습은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사고라도 난 것이 아닐까, 불안했습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초등학생 유괴 사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할 수 없이 걱정스런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지요. 헌데 집안에서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이건 국이 타는 냄새인데.' 급히 주방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국을 데우다 작은 방으로 도망치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더군요.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와 김치찌개를 데우다 그만 조금 태운 모양이었습니다. 집안에 탄내가 그득한데도 우리 부부는 화를 내기는커녕 마주 보며 안도의 웃음을 주고받았답니다. 무사히 돌아와 준 아이가 고맙기만 했거든요.

이번에는 어느 집안 막내딸의 고백입니다.

홀로 팔 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칠순잔치가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성공한 형제들은 저마다 가치 있는 선물을 준비했죠. 큰 돈을 봉투에 넣어 준비한 형제도 있었고, 비싼 보석을 준비한 형제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경쟁하듯 좋은 선물을 준비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어디에나 아픈 손가락은 있기 마련입니다. 능력이 부족한 남편을 만나 팔 남매 중 가장 가난하게 사는 저는 겨우 닭찜 한 마리를 준비했을 뿐입니다.

형제들은 보잘 것 없는 선물을 준비한 저를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더군요. 선물의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어머니가 평소 닭으로 만든 음식을 잘 드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의 선물은 제쳐둔 채 제가 준비한 닭찜을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어머니는 평소 가난에 쪼들리며 자라는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무척이나 좋아하는 닭고기를 일부러 안 드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어머니께서 꼭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사는 형편도 어려웠고요.

젊은 엄마가 보여 준 '내리사랑'과 막내딸이 보여 준 '치사랑'이 우리 사회에 강물처럼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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