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를수록 복잡하게 말한다

2012.08.08 16:15:33

이혜진

옥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지식생태학자 유영만님의 저서「니체는 나체다」를 읽다가 나의 눈길을 강하게 붙잡는 한 대목에서 나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잘 모를수록 복잡하게 말한다.'는 구절에서 나는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무엇이든 어렵게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본다. 설명을 어렵게 한다는 것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라고 한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쉽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사람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 설득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유행처럼 우리나라에 열린교육이 뜨겁게 교육계의 판도를 뒤흔들 때 교육계 밖에 있던 일반 사람들은 과연 열린교육이란 어떤 것인가 많이 궁금해 하였다.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가 교육계 열린교육의 대가이며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이에게 열린교육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열린교육의 의미부터 필요성, 중요성 등을 열변을 토해가며 길게 설명을 했다. 질문한 사람은 답답해서 간단명료하게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질문자의 의도와 다르게 장황하게 열린교육을 설명 했던 기억이 났다.

요즘은 스마트(SMART)교육이다, 스팀(STEAM)교육이다 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교육 시장에도 스마트교육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계에 유행처럼 새로운 용어와 교육방식이 등장해서 일정기간 그것만이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회오리치다가 용어를 제대로 익힐 여유도 없이, 그 교육방법을 제대로 정착시키기도 전에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일에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쉬운 것도 어렵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신만이 아는 전문용어를 주로 사용하다보니 일반인들은 공감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일수록 먹을 것이 없는 것처럼 화려하고 그럴 듯하지만 정작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의 나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렵고 복잡할수록 명료하게 하라' 정말로 놀라운 얘기다. 진정한 실력자는 핵심과 본질이 잘 드러나게 단순하고 명쾌한 원리로 답을 얘기한다. 공감이 가는 일상적 사례를 들어 쉽게 비유하면서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어설픈 실력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닌 주변만을 헤매는 경우가 많다. 명료한 것은 결코 복잡하거나 모호하지가 않다. 복잡하게 표현 한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잘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장황하면 복잡해진다. 단순함의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뺄게 없을 때 완성된다고 한다. 단순함은 생각의 단순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각은 복잡하지만 수많은 사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의 핵심만 남게 되는 것이 단순함이다.

대학시절 주관식 시험을 볼 때 정확한 답을 모르는 경우에 동정점수라도 얻을 요량으로 이것저것 핵심도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았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시험지의 지면이라도 채워서 창피함을 모면할 생각으로 그리했던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쓸데없이 길게 설명하거나 장황하게 얘기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과 오래 얘기하다보면 나중에는 피곤함까지 느껴진다. 상대가 말하는 핵심을 찾으려 머리를 쓰다보면 에너지가 소모되고 짜증까지 나게 된다. 사람들은 잘 모를수록 자신의 우매함을 감추기 위해 더 길게 더 그럴싸하게 설명을 한다. 하지만 상대는 다 안다. 말하는 사람이 알고 말하는지 그냥 떠드는지 말이다.

나는 종종 교육계 밖에 있는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혹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내게만 익숙한 교육적인 용어로 상대방이 공감하지 못한 얘깃거리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었는지 생각해보니 다분히 그런 경우가 많았음을 느낀다. 오늘 문득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내 부족함을 감추려고 그럴싸하게 포장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한번쯤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이다. 모르는 것을 감추기 위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는지, 무언가 명료하지 않는 업무 지시로 사무실의 분위기를 어둡고 무겁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52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