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그리고 긴 이별

2012.02.22 17:27:22

이혜진

옥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지역교육청에 근무하다 보니 학교에서 보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더 잦다. 학교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즉 3월과 9월 교사들의 정기인사로 인한 이동이 있고, 가끔씩 행정실의 일반직 인사이동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역교육청에서는 심심찮게 과원이 바뀌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주로 업무보조원들과의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이다. 일 년 단위 계약제이기 때문에 정들만하면 떠난다. 서로의 성격이나 유머 감각을 익힐만하면 이별해야 하는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9월 부임 이후 6개 월 만에 여러 명의 보조원들과 계약이 만료되어 이별을 했다. 간단한 송별회를 하고 등 다독여 또 만나자고 위로하며 보내지만 떠나는 뒷모습이 남아있는 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오래토록 머물 직장을 잡지 못해서 임시로 와 있다가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젊고 풋풋한 인재들의 자리 이동이나 떠남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떠날 때마다 뒤에 남겨진 우리는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더 좋은 직장이 생겨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사업 종료와 함께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다. 방과 후 인턴, 창의체험 인턴을 비롯하여 특수보조 등 다양한 이름의 보조 인력들이다.

모두 대학 졸업장 가지고 정보처리 및 워드 1급 등 서너 개의 각종 자격증은 물론 갖출 수 있는 모든 자격은 다 갖추었는데 능력과 자격에 맞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방황하는 고급 인력들이라는 점이 큰 문제인 것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계속 일하지 못하고 쉬엄쉬엄 일자리 있을 때만 단기 계약하여 일하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사회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광경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집에도 둘째가 아직 완전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걱정이다. 유학도 다녀왔고 높은 토익 점수도 따 놓았지만 쓸모가 별로 없다. 벽 높은 중등임용고사가 바위처럼 아이를 누르고 있다. 본인이 힘든 건 말 할 필요도 없겠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임용고사 준비를 철저하게 잘해서 합격하면 좋겠지만 수 십대 일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모두가 다 잘해도 누군가는 떨어지게 되어있는 구조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할 얘기는 남보다 좀 더 열심히 하라는 말 뿐 무얼 어떻게 해주지 못한다.

'됫글로 배워서 말글로 써 먹는다.' 옛말이 있다. 적당히 배웠는데도 좋은 직장 잡아 제대로 배운 바를 사용한다는 말이다. 요즘은 말글로 배워도 됫글로도 못 써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운 바를 성실하게 실천하며 능력 발휘를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많지 않다는 점이 슬픈 현실이기 때문이다. 망망대해를 청년들에게 알아서 헤쳐 나가라고 등만 떠밀어서 될 일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 능력 완전하게 익히고 예능 다 갖추고 온갖 자격증 다 따 놓아도 써 먹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막막함을 떠나 삶의 의미마저 잃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두렵다. 청년들이 시들어 가고 있다. 젊은 패기도 잃고, 용기도 잃고, 도전 정신도 잃어가고 있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맞는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길이 있고, 우리 인생은 모두 자기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자기 길을 찾아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창조해야 하는 책임이 개개인에게 있지만 이를 뒷받침 해 주어야 할 기본 책임이 사회에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개개인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이 아니라, 긴 만남으로만 채워지는 그런 세상은 올까· 건장한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마음껏 일 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정말로 그날이 빨리 왔으면 참 좋겠다. 청년들이 당당하게 일터로 출근 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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