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기도

2012.04.04 17:58:30

이혜진

옥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꽃샘추위가 몸속으로 파고드는 새벽이다. 단단히 차려입고 새벽기도에 동참했다. 기도실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나는 날마다 이 기도실에서 이기적인 기도를 열심히 했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날마다 하나님께 자꾸 뭔가를 달라고 떼썼다. 건강도 챙겨주시라고 주문하고, 자녀들의 앞길도 열어달라고 간구하고, 매일 매일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해달라고 부탁만 하는 기도였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눈감고 조용히 그 동안의 기도 내용을 생각해봤다.

하나님이 내게 더 이상 줄 복이 무엇인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주어야 내가 만족하게 될까·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아서 다 헤아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따뜻한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외롭지 않게 가족이 함께 있으며, 날마다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데 이 보다 더 이상의 무얼 바라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자상하고 마음 따뜻한 남편이 있고, 예쁜 두 딸이 있고 큰 사위까지 얻었는데 더 이상 욕심을 내면 벌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친정 부모님 또한 살아계셔서 큰 딸인 나를 늘 염려해 주시고, 형제들 모두 건강하게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말이다.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아서 주체 할 수 없음을 진즉 눈치 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끝없는 욕심을 부리며 오늘에 까지 이르렀다.

왜 나에게 물질로 건강으로 좋은 직장으로 과분한 축복을 하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건 나 혼자 아니, 우리 가족만 누리라고 주신 축복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이웃 일일이 다 챙기지 못할 수 있으니 선량한 청지기 되어 어려운 이웃이나 부모 형제를 알아서 챙겨 주라는 뜻임을 느끼게 되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동안 형제들의 어려움을 잘 챙기지 못하고 살아온 모습이 부끄럽고 마음 아파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은 나와는 무관하며 처음부터 가난한 운명으로 태어난 거라고 생각할 뿐 도움의 손길을 펼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난이 내 눈 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내가 나서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제와 이웃들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쏟지 못함이 참으로 죄스러웠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표현하지 못하고 내 처신만 기다렸을 동생들의 선한 눈매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내게 주어진 여러 가지 축복을 그저 당연하게 내 것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청지기 역할 제대로 하라는 뜻을 참으로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더 늦기 전에 깨달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감사란 참 아이러니컬한 것이다.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감사하며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매번 같은 행동을 해도 느껴지는 감동은 늘 다르다. 새벽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같은 시간 비슷한 내용으로 기도를 해도 마음에 감동이 솟구칠 때가 있고 덤덤한 마음일 때가 그렇다. 오늘은 참으로 기도가 잘 된 새벽이었다.

기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새벽 찬바람이 전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이 따뜻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발걸음이 가볍고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지고 신났다. 행복감이 충만해서 뭔가 좋은 일이 금방 생길 것 같았다. 출근 전 처리해야 할 크고 작은 집안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일할 수 있는 건강함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일상의 수고로움이 축복으로 생각되었다. 생각의 차이가 이렇듯 사람을 크게 변화시키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음에 감사 또 감사드렸다. 마음의 변화를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기적은 꽤나 가까이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대단한 것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기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지금부터 나는 그 기적을 용감하게 만들어서 실천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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