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천국을 꿈꾸며

2012.03.21 16:55:54

이혜진

옥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학교에서 지역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보은 판동초등학교장으로 3년 반 근무하다 옥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으로 이름표를 바꾸어 달게 되었다. 지난해 9월 1일자 발령이니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잠시 출장 나온 기분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는 온종일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 차 있어서 때로는 아이들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근무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의 소리가 없는 곳에 근무하다보니 아이들의 소리가 금새 그리워진다. 아이들이 없는 곳이지만 지역교육청은 하루 종일 북적거리고 어른들의 소리로 혼란스럽다. 여기저기서 걸려온 전화 받는 소리,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로 장학사와 면담하는 소리, 각종 사업장에서 볼 일 보러 온 민원인들까지 겹쳐서 교실 한 칸 정도 되는 사무실은 조용한 날이 별로 없다.

문득 문득 학교에 두고 온 아이들이 참 많이 보고 싶다. 어른들의 소리가 아닌 아이들의 청량한 소리가 듣고 싶다. 학교에 있을 때는 매일 매일 듣는 소리라서 아이들의 소리가 그렇게 행복한 소리라는 걸 잘 느끼지 못했다.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당연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곳을 떠나와 보니 참 그립고 정다운 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흔한 소리가 아니라 선택 받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귀여운 유치원 아이들부터 부쩍 성인이 된 듯한 6학년 아이들까지 나름대로 개성이 넘치고 장난기 많던 모습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말썽을 피워도 귀엽던 개구쟁이 철이도 보고 싶고, 미소가 일품이던 유치원 꼬마들의 눈웃음도 그립다. 급식소에서 나란히 줄을 서서 점심을 기다리던 모습이랑, 푸른 천연 잔디밭에서 축구공 따라 뛰던 힘찬 모습, 아름다운 선율로 오후 시간을 행복하게 하던 방과후 플롯 소리, 기합소리 우렁찬 태권도반의 절도 있는 모습들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지금도 여전히 잘들 있겠지· 내가 이렇듯 보고 싶어 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학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미래가 존재하고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곳이어서 참 신났다. 당장 완성된 것은 없어도 꿈꾸는 아이들의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고 보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일상 속의 작고 단순한 변화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변화들을 미미한 것이라고 얕잡아 봐선 안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 미미한 변화들이 시원찮아 보이고 눈에 확 띄지 않을지라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미래가 아이들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 차려야 한다.

아이들 속엔 각기 다른 빛의 진주가 숨어 있기도 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섞여 있어도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그들만의 재능과 장점이 따로 있다. 그걸 잘 찾아내어 심어주고 키워주면 그것이 곧 성공이요 희망이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각자의 빛을 발하는 진주를 만들어 가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그 속에서 근무할 때는 진주 빛의 아름다움을 가끔씩 잊을 때가 있었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귀한 줄을 몰랐다. 잠시 자리를 옮겨 앉고서 보니 그 귀한 미래의 꿈나무들이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또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오늘의 나를 한결 힘나게 만들어 준다. 다시금 학교의 내 자리로 돌아간다면 더 많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결핍을 경험해 봐야 풍요로움에 감사할 수 있듯이 아이들 소리에 목마름을 체험했으니 마음껏 아이들 소리에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 땐 교장실 문도 더 활짝 열어서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거리낌 없이 드나들며,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지 상담하고 의논 할 수 있는 편한 곳으로 만들리라. 학생이나 선생님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누구든지 어려움에 처하면 가장 먼저 교장실을 떠 올리게 하리라.

혼자서 작은 천국을 꿈꾸며 행복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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