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를 좋아하고 즐겨 마시다 보니 차뿐만 아니고 다구에 대해서도 욕심이 많아진다. 차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차도 무슨 차를 마시느냐에 따라 차를 우려내는 다관이나 찻잔이 달라진다. 녹차를 마실 때는 도자기로 된 우리 다구들이 좋고 중국차를 마실 때는 질 좋은 자사호나 개완에 우려 마신다. 일본 말차를 마시게 되면 입구가 넓은 찻사발이 필요하기도 하다.
우연히 중국차를 알게 되고 마시기 시작한 것이 여러 해 되니 내 차 살림도 꽤 늘었다. 비싼 다구는 아니어도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구입했고 예쁜 찻잔이 눈에 들어오면 꼭 필요하지 않아도 욕심이 난다. 그러던 차에 나무를 깎고 다듬어 만든 다탁(茶卓)이 하나 생겼다. 그전까지 대나무로 된 조그만 다반(茶盤)을 사용했는데 다구에 대한 내 욕심이 커진 탓일게다.
나무 다탁은 통나무를 이리저리 모양새 있게 다듬어 만든 것인데 한쪽에 포대 화상이 조각되어 있다. 처음 볼 때는 포대 화상이 누군지 몰랐기에 조각이 조금은 낯설었다. 넉넉한 웃음은 그렇다 쳐도 늘어진 가슴과 풍선처럼 불룩한 배를 내밀고 넉살좋게 앉아 있는 모습이 차를 마실 때마다 함께 하기에는 왠지 거부감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은 커다란 자루 하나만을 메고 다녔는데, 그 자루 속에는 중생들이 원하는 것이 들어 있었고 자신이 가진 것을 웃는 얼굴로 중생들에게 내어주고 자유롭게 살았다고 한다. 가지려는 욕심보다는 있는 대로 다 내어주며 무소유의 자유로운 삶을 살다 간 분이다. 그렇기에 미륵보살의 현신(現身)으로 모셨다고도 한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던 것도 자꾸 보면 정감이 간다. 다탁 한가운데 넉넉한 웃음으로 좌정한 포대 화상의 웃음도 자꾸 보니 정겹다. 가진 것들을 내려놓는 것은 참 어렵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고 더 좋은 것들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나 역시도 욕심은 많은데 뜻대로 되어 주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하니 스스로 만든 굴레 속에 갇혀 버린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차를 더 많이 소유하고 싶어 하고 더 많은 다구를 욕심내는 것도 세상 이치와 닮았다. 비싼 다구가 없어도 얼마든지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며 차를 마실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새삼스럽게 포대 화상처럼 무소유의 삶을 살려고 꿈꾸지는 못한다. 난 여전히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내 삶에 더 많은 욕심을 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평화가 머문다.
어쩌면 포대 화상이 있는 다탁은 나와 예정된 인연은 아니었을까 싶다. 차 한 잔을 마실 때마다 포대 화상의 무소유의 삶을 떠올릴 것이고 부질없는 욕심을 찻잔을 비우듯 비워내면 내가 가진 행복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