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솔직한 고백

2023.04.04 16:52:11

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지인의 출판기념회에 갔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신 분인데 늦은 나이에 글공부를 시작하셨지만 꾸준한 열정 덕분에 수필집을 내게 되셨다고 한다. 그동안 쓴 작품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얼마나 힘들면 한 권의 책 출간을 산고의 고통에 비유하기도 하겠는가.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출간 기념회에 와 준 손님들을 맞이하는 작가의 모습을 봤다. 겉으로 뵙기에는 조용한 성품이지만 가슴속은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분이시다. 끊임없는 독서와 습작으로 자신을 담금질하며 알찬 작품집을 탄생시켰다. 그런 노력이 있기에 여든을 넘긴 연세에 첫 수필집을 출간한 것이다.

출간 기념행사를 보며 더 놀라웠던 것은 멀리에서 찾아와 준 오랜 친구들과 작가의 우정이었다. 부산에서 음성까지 와 준 고교 친구들과 넘치는 우애, 멀리 미국에서 오셨다는 작가의 벗들이 진심으로 손뼉을 치며 자기의 일처럼 기뻐해 주는 모습이 인생의 후배인 모임 회원들을 숙연하게 했다.

오늘 행사의 주인공인 작가는 젊은 나이에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사셨다고 한다. 오랫동안 살아 온 그곳은 가족들의 삶의 기반이고 터전이다. 가까운 외국도 아니고 멀리 남미에 있는 과테말라다. 현재는 거처를 음성으로 옮기셨지만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야 도착하는 그곳을 지금도 일 년에 몇 번씩 오가신다고 한다. 자신의 사업체를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곳은 또 다른 고향이고 자신의 인생이 응집된 곳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에 이민을 가서 지금 삶의 터전을 완성하기까지 사연을 글로 쓴다면 소설책 서너 권은 될 것이라고 한다. 낯선 곳에서 생활하며 풍파와 굴곡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삶의 솔직한 고백을 한 권의 수필집에 알차게 차곡차곡 담으셨다.

작가의 지난 온 삶의 편린을 직접 또는 친구분들을 통해서 들었다. 집에 와서 다시 책을 펼쳐보니 작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투영된다. 이민자의 삶, 안착한 후에는 다른 이민자들을 위한 봉사의 삶, 수필 작가의 삶 등 한 권의 수필집은 살아 온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소모임을 하는데 우리의 글 스승님을 통해 책을 많이 읽고 부지런히 글을 써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를 들었다. 백일장을 통해 시작된 우리 모임은 처음에는 글쓰기 모임이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친목 모임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시작됐지만 이제는 중년이나 노년에 접어든 회원들이다. 젊어서는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토론하며 글공부도 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친목 모임으로 변해버렸다.

물론 부지런히 글을 써서 작품집을 낸 회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회원들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기에 선생님의 충고가 가시에 찔리듯 가슴이 따끔했다. 글을 쓰지 못하면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못한 현실이다. 책을 사도 책장에 전시하듯 꽂아만 두고 눈이 아프고 시간도 없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책장의 책은 내 지적 허영물이 되어 버린다.

나이가 들면서 잠을 설치는 날들이 많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볼 것이 없어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도 여전히 시선은 텔레비전 속에 머문다. 이렇듯 내가 허비하는 시간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봐도 좋겠다는 다짐이 든다.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늘어난다. 한 가지씩 차근 차근 해봐야겠다. 연세 지극한 회원이 살아 온 삶을 한 권의 책에 담아 내듯 나도 언젠가 내 삶의 솔직한 고백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봐야겠다. 초로의 나이에 접어드니 인생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배우며 그분들이 살아 온 삶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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