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

2025.03.24 14:47:06

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지인들과 함께하는 오랜만의 제주 여행은 가기 전부터 즐거웠다. 제주에서 이르게 느낄 봄의 기운과 새로운 음식들, 무엇보다 함께 할 지인들과의 웃음소리로 별것 아닌 일에도 깔깔거리며 소녀적 감성 가득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설렘이 찾아온다. 언제나 느끼지만 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낯선 곳에 대한 기대와 그곳에서 머물며 느낄 공간도 궁금해진다. 이번 여행이 줄 기대치를 상상하며 지인들과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날 비자림에 갔는데 내가 비자림에 가는 날에는 늘 가랑비가 함께 한다. 가랑비는 비자림이 주는 신비로움과 운치를 더하게 한다. 주홍빛이 산뜻한 귤 모자를 사서 쓰고 숲길을 걸었다. 울창한 숲길은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자연이 주는 고요함과 아늑함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언제 누구와 찾아와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겨주는 비자림 숲길을 걷다 보면 절로 겸손해진다. 인공적인 느낌이 덜하고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 더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울창한 나무와 이름 모를 식물들 사이로 붉은 화산석이 깔린 길을 걸으며 삶의 희로애락을 지인들과 나눴다. 천년의 숲 비자림이 주는 힐링의 시간이다.

나이가 들며 건강의 중요성이 와 닿아서인지 여행을 가도 숲길이든 해안 길이든 걷는 것을 좋아한다. 제주에는 올레길 코스가 다양하지만 아쉽게 기회가 안 됐다. 그 대신에 날씨 때문에 포기했던 용머리 해안을 운 좋게 걸을 수 있었다.

산방산 앞 노란 유채밭을 지나 바닷가로 향하면 용의 머리를 닮았다는 용머리 해안이 나온다. 오랜 세월 동안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이다. 거친 파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깎인 기암절벽이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완성할 수 없는 기묘한 풍경 앞에 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암벽만이 간직할 파도의 오랜 흔적은 그대로 자연에 압도당하고도 남을 기억을 남겼다.

따사로운 바닷바람과 반짝이는 파도, 멋진 기암괴석을 마주하며 용머리 해안을 걷다 보면 내 마음속 고민과 걱정도 바람 따라 훌쩍 사라지는 느낌이다. 장엄한 자연 앞에 서면 일상의 피로감은 하찮은 걱정이고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충전된다.

함께 여행하며 즐길 수 있는 지인들과 아직은 건강하게 다닐 수 있는 내 체력이 새삼 고맙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 여행도 서로가 도와주고 배려한 덕분에 더 유익했다. 세상살이는 늘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바쁘게 살다 보면 여유를 갖기 어렵다. 걱정과 근심도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간다. 이럴 때는 가방을 챙겨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도 좋고 가까운 친구와 함께라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팍팍해진 삶에서 잃어버린 온기를 찾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하나 더 추가되는 게 여행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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