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일은 눈을 뜨지 않아도 되다니…, 나는 그게 너~무 좋아." 글쓰기 공부를 함께하는 초등학교 교사들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목소리를 통통 퉁겨 올렸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으니 출근 시각에 맞추느라 잠자리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는 걸 나는 금세 눈치챘다. 그 말 한마디에 다들 낯꽃이 벚꽃처럼 환해진 것 같았다.
선생님들이 아침에 눈 뜨기를 싫어하는 까닭은 빤하다. 날마다 정해진 시각에 출근해서 교실과 교무실을 오가며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그렇게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하도 지겹고 고달파서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 번 바꿔 생각해보라고, 오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러다 보니 세상과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아침마다 눈을 뜨기가 싫은 이들도 주위에 참 많지 않으냐고, 어디 그뿐이냐고, 지금 잠들면 내일 아침에 눈을 영원히 뜨지 못하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워서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 멈칫거리는 사람들도 아마 적지 않을 거라고…. 뭐, 그런 말을 입안에서 우물거리다가 모처럼 환해진 그들의 낯꽃이 금세 시들어버릴까 봐 입에 빗장을 걸고 말았다. 대신 나는 아주 오래전에 TV로 방영된 적 있는 어느 카드회사 광고 카피를 머릿속으로 더듬어 찾아냈다.
'일이 끝났다 / 그녀에게 간다 / 나는 떠난다 / 일이 끝났다 / 그를 기다린다 / 나는 떠난다 / 열심히 일한 당신 / 떠나라' 어떤 일의 성취감은 해방감과 더불어 온다. 그건 어디론가 마음껏 떠날 수 있는 홀가분한 기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토록 고통스럽다면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묻는 이에게 어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탈고한 순간 맛볼 수 있는 희열 때문이겠죠.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죽어주는 기분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걸요?"
언젠가 겪게 될 이별의 고통이 두려워서 모처럼 찾아온 사랑을 눈앞에 두고 멈칫거리기만 하는 사람은 깊이 사랑하기 어렵다. 얕은 사랑 뒤에 찾아온 이별의 아픔은 소주 한잔으로도 얼마든지 훌훌 털어낼 수 있는 법. 이별의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건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힐끗힐끗 훔쳐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기요, 선생님들.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좋다고만 하지 말고요, 내일은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일찍 눈을 떠서요, 어디로든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요즘 봄날이 진짜로 사람 환장하게 화창하잖아요?'
하긴, 이토록 화창한 봄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격 같은 게, 뭐, 따로 정해져 있으랴. 열심히 일한 당신이든, 그러고 싶은 당신이든, 설렁설렁 일한 당신이든, 벌써 며칠째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룬 채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당신이든, 요즘처럼 한바탕 꽃 잔치 벌어진 봄날이 이토록 사람 환장하게 화창하게만 여겨져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는 당신이라면, 누구든, 어디로든, 떠나보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