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몸부림칠 때

2024.03.20 14:36:00

송준호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누구나 지축 위에 / 홀로 서 있나니 / 햇살 한 줄기 뻗쳤는가 하면 / 어느덧 황혼이 깃든다.' <황혼이 깃들고>라는 짧은 시다. 이걸 쓴 이는 1959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시인 살바토레 콰시모도(Salvatore Quasimodo)라고 한다. 그가 노래한 그대로다. 우리들 각자는 누가 뭐래도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 그런데 햇살이 머무는 시간은 짧고, 어느덧 깃드는 황혼 속에 누구나 항상 홀로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딱 20년 전인 2004년에 상영된 바 있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라는 영화가 있었다. 시골 노인들의 로망을 재미나게 그린 이 영화에는 주현, 박영규, 송재호, 양택조, 김무생, 선우용여 같은 중견 배우들이 출연했다. 빈티지를 살려 디자인된 포스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거기 배치된 배우들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고독'과 '몸부림'의 조합 또한 익살스러웠다. 그런데 고독이 얼마나 헤어나기 어려운 고통으로 여겨졌기에 거기서 벗어나려고 '몸부림'까지 쳐야 했던 걸까. 알고 보면 그런 게 외로움이고, 우리네 사람살이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흘러간 노래 몇 곡 들어보자.

'너를 보내는 들판에 / 마른 바람이 슬프고 / 내가 돌아선 하늘엔 / 살빛 낮달이 슬퍼라 / 오래토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길로~'

임희숙이라는 가수가 불러서 크게 히트한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의 1절이다. 이 노래는 시인이자 노래 운동가인 백창우가 서적 외판원으로 고단하게 살아가던 27세 무렵에 만들었다고 한다. 노래의 화자인 '나'는 '너'와 헤어진 뒤 찾아온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 때문에 쓸쓸하다. 혹은 고독하다. 곁에 아무도 없어서 외로움을 견디기가 막막하다.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하지만 다시 만날 기약 또한 없다. 겨우 20대 중반을 넘어섰을 청년 백창우의 고뇌가 절절하게 와 닿았다.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혼자 / 사랑을 잊지 못해 애타는 마음~' 이건 1960년대 가수 차중락이 부른 <사랑의 종말>의 첫 부분이다. '산산이 부서'져서 '허공중에 헤어'졌기 때문에 '불러도 주인없'고 '부르다가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 소월의 <초혼>을 떠올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고독이 몸부림칠 때>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언제가 들어본 적 있는 옛 노래 한 구절을 또 소환해서 낮게 흥얼거린다.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 / 갈 길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 비에 젖어 우우네~' 패티김이 불러서 많은 사람의 가슴에 비를 내리게 했던 <초우>는 그렇게 시작해서 '마음의 상처 지울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로 끝난다.

그런데, 그런데 이토록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고독이 어쩌고, 지울 길 없는 마음의 상처는 또 어쩌고, 하면서 적잖이 외로워지는 까닭은, 혹시, 저기 저 TV 화면에 비친, 환자들 두고 가운을 벗어 던진 의사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와서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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