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고생 짊어지다

2024.04.04 14:40:54

박주영

시인·수필가

어머니는 정든 고향을 떠나 부천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봄마다 꽃들이 '팡팡' 터지고, 가을이면 수수 밭고랑에서 호미질 바쁘던 손을 내려놓고 시골을 떠나셨다. '오소소' 모여 정들었던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낯설은 도심에서 시린 무릎을 꺾고 앉은 어머니는, 골목마다 '북적북적'한 시장통로에 옷 가게를 차렸다. 두 아들이 서울의 좋은 대학에 합격하자 학비걱정에 거처까지 옮기신것이다.

시골에서 옷을 팔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에 길거리에서 속옷을 팔기 시작했다. 간신히 용기 내어 벌린 좌판이지만, 오직 옷 파는 일에 몰두 하셨다. 몇 년 지나 가게를 반듯하게 차린것도 뚝심 하나로 버텨낸 결과였다.

옷가게에서 들리는 소리다.

"엣따 이게 딱 본전이오 차비도 안나오것오 장사란게 다 잇속을 보자고 허는 노릇인디~"

그러던 어느 날 박꽃처럼 훤~하던 어머니 표정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시무룩하게 일그러졌다. 어떤 손님과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 손님이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옷을 바꿔 달라 떼를 쓰고있다. 작은목소리로 어머니가 말 하셨다.

"요번이 세번째 바꾸러 오셨고만이라우~ 1년 전에 팔은 옷을 또 바꿔달라니 참~내"

그래도 그 손님은 아랑곳 없이 가시나무처럼 악다구니를 쓰며 궁시렁거린다. 어깨가 작고 팔이 너무 길다는 둥, 몇 번 입지도 않았다며 어긋장을 놓는다. 어떤설득에도끄떡없이 속물처럼 말을 내 뱉어내고 있다. 어머니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착한 미소로 다시 말을 건넨다.

"마지막으로 바꿔줄테니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마쇼 잉 후~우"

손님이 돌아간 뒤 신세 한탄을 내게 털어 놓았다.

"그 막되 먹은것이 무슨 억하 심정으로 내 맘을 쑤셔 놓는거여 다 †C아빠진 옷을 참말로 너무하는고만 잉~"

화살처럼가슴에 박힌 말을 쏟아내더니, 부아가 치미는지 얼빠진 눈빛에분심이 가득하다. 손님이 던져 놓고간 옷을 움켜쥐고 가위로 잘라 쓰레기통에 쑤셔넣는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은 "억울함이 북받치지만 어쩌것냐 참아야제~"

가끔 손님들이 옷값을 흥정하면서 터무니없이 깎아내리고 바꿔 달라 트집을 부리기도 한단다. 또한 저렴하게 베푸는 호의를 장삿속이라고 밑불 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한다. 어머니는 시장 골목길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침묵하더니 입버릇처럼 중얼이신다.

"수양산 그늘에 강동 팔십리여!! 어미 그늘이 월매나 좋은건지 너그들은 잘 모를거여~"

비록 척박한 시장골목에서 낮이고 밤이고 일하지만 자식들을 향한 마음만큼은 각별하셨다. 회초리 감춘 그 깊은 마음속으로 회화나무가 새끼 솔부엉이를 둥지로 감싸 듯 애틋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동안 어머니는 벼랑 끝에 선 붉은 꽃처럼 가난의 자존감을 홀로 삼키며 견뎌왔던 것인가 속으로 소리없이 그렇게 울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장사 철학이 이런거였구나.'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었다.

내가 한마디 건넸다.

"어머니도 화 낼 줄 아시네요 그래도 그 손님에게 친절하게 해줘놓고선"

그랬더니 한숨을 푹~쉬며 "이런 일이 어찌 이번 뿐이것냐 못 배운 한을 자식들헌테 물려주지 않으려면 그래도 내가 참어야제~"

일곱살 때 외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공부 1등 자리를 놓치지 않고도 초등학교 4학년 밖에 다니지 못했다면서, 공부가 한에 맺혀있었다. 젖도 떼지못한 막내 동생 젖을 얻어 먹이면서 틈 나는대로 밭에 나가 풀을 뽑고, 가장처럼 생활을 이어갈수밖에 없었단다. 그런 지난 삶이 못이 박히도록 아프다고 하셨다.

어머니 인생을 쪼개어 나눠보면 온통 찬바람같은 슬픔이뿐이었다. 소녀시절은 어린동생들 돌보느라 자신은 학교도 포기했고, 결혼 후 온갖 궁리를 다해도

모자라는 자식들 학비때문에 냉수 한 사발로 주린배를 채웠다. 그런 슬픈 생애를 딛고 일어섰지만 왠만한 일에 가슴 맺힘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오늘처럼 절망하는 모습을 난 처음 보았다.

며칠 뒤 옷을 세번 바꿔 갔던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변함없는 어머니 마음에 감동받았다면서 그 때는 정말 미안했다는 사과의 말을 전했다. 옷 몇 벌을 다시 구입하면서 따뜻한 악수를 청 한다.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참말로 고맙소 잉~ 다시 와 주셨고만이라우~"

어머니는 그리도 속 썩였던 손님에게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셨다. 그 분이 돌아 가신 뒤, 일부 남긴 옷 값을 외상장부에 삐뚤빼뚤 적으신다. 그 뒤 까다롭던 그 손님은 친구처럼 착한 단골이 되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신용으로 맺여진 수 많은 손님들…. 그 들은 부천을 떠난 후에도 옷을 구입하러 잊지않고 찾아와 주었다.

어머니는 평소 투박하고 헐렁한 미소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별로 초조하지도 급하지도 않으시다. 치장 같은건 아예 멀리하고 여름이면 할랑한 모시 옷 하나 걸쳐입으면 그만이다. 혹독한 겨울에도 겹옷 하나로 견뎌내고, 목숨처럼 받들어 가게문을 지키신다.

또한, 덕을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 하나로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는 일을 기쁨으로 여긴다. 바쁜 틈으로 부엌을 서성이며 무엇을더내놓을것인가 발걸음이 늘 분주하시다. 또한 홀로 사는 어르신들 점심 대접을 위해 배추 겉절이와 보리밥이 떨이지질 않았다.

다시 가게에 손님들이 밀어닥친다. 오늘도 보잘것 없는마음하나비우고 헝클어진 머리를 곱게 빗어내리는 어머니… 자갈자갈' 속삭이는 사람들 소리를 귀하게 여긴 덕분에 옷 가게는 손님들로 늘 북적거렸다. 그 덕분에 힘들다는 불경기도 거뜬하게 잘 넘길 수 있었다.

두 남동생들 졸업식 날이었다. 가장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모처럼 화장을 곱게하신 어머니는, 마음속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겨우 내려놓으셨다.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보여주셨다.

나는 보리밥을 입에 넣을 때마다 그리움이 한 웅큼 올라온다. 내 맘속에 끈끈히 고여 있는 어머니의 향수 같은 맛 때문이다. 오늘도 부천 한신 시장 그 가게 옆을 지날 때마다 내 그리움이 소리 없이 차곡히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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