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에 떠오르는 생각들

충북광장

2019.11.13 18:17:46

최시억

국회 과학기술정보 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웰튼 아카데미는 설립 된 이후 대다수의 학생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미국 명문 고등학교이다. 전통과 규율, 그리고 대학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웰튼 아카데미의 모토다. 이런 웰튼 아카데미에서 연극 배우를 지망하는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곳에 돌아온 괴짜 영어선생 키팅은 교장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교육의 목적이 사색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장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확고하다. "그들 나이에? 말도 안 돼. 대학입시에만 전념하게 해." 영화에 등장한 '죽은 시인'들은 한국 사회에 묻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육은 본디 인간이 성숙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성인으로서 사회에 나오기 전 규범, 인간, 사회, 타인에 대해 배우는 12년의 과정은 자신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화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에서의 학교교육의 목적은 '대학 입학'이라는 단 한 가지로 수렴한다. 공고한 학벌 사회인 이 곳에서, 학벌은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가장 안전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더 높은 지위와 부를 가진 부모가 자식에게 투자할 수 있는 사교육비는 그렇지 않은 부모보다 많다. 또한, 더 많은 부를 가진 부모는 교육 정보를 취득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학종 코디, 학부모 네트워킹이 이를 보여준다. 대입 전형이 사회경제적 상위계층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유지하게 된 이유다.

최근 정부가 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입시 구조 하에서 정시-수시 비중을 얼마로 하느냐는 접근은 근본적인 해결안이 되지 못한다. 정시는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점수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에 공평해 보이지만, 부모의 배경이 자식의 교육을 좌우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이는 형식적 공정에 불과하다. 수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잠재적인 능력과 가능성을 입학 기준으로 삼겠다며 학생부종합전형이 등장 했지만, 학생부종합전형에 필요한 학생들의 스펙을 쌓는데 부모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수차례의 방송과 기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오히려 잦은 입시제도의 변화는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을 뿐이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대학이 '간판'이 되는 사회에서 교육의 목적은 학벌 대물림이 될 수밖에 없다. 수시냐 정시냐, 일반고냐 자사고이냐의 근시안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학벌이 개인의 삶에 과도한 영향을 주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제안한다. 교육이 그 자체로서 온전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적이 대학 입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바칼로레아 시험주기는 '생각하는 날'이라 명명된다. 시험 문제는 '우리는 진실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불의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가?' 등의 열려있는 문항으로 구성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괴짜 선생 키팅처럼 교육의 목적을 '사색하는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부가 학벌로, 학벌이 교육으로 이어지는 공고한 학벌주의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이 완고한 사회 구조가 깨어지지 않은 한, 한국판 웰튼 아카데미의 비극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학벌이 아닌 실력과 재능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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