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으로 산다는 것

2019.02.27 13:38:27

최시억

국회도서관 의회정보실장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출근 길 매일 아침, 나는 뜨는 해를 바라보며 운전대를 잡는다. 러시아워(Rush Hour)는 직장에 늦지 않으려는 조급함으로 내몰기도 하지만 더디기만 한 흐름 속에 일단 차를 맡기면 한 동안 속념(俗念)의 호사를 누리게도 한다. 어디 있던지 주인이 돼라! 내가 아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뜻이다.

 오늘 아침 문득 이 말이 생각난 것은 며칠 전 국회도서관 강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간절함이 뒤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헛되이 날릴 수 있으므로 간절함을 가져야만 기해년에 많은 성과를 이뤄 낼 수 있다는 강연이었다. 과연 나는 간절함으로 내 삶을 살고 있는가? 한 시간여의 강연 중에서 유독 이 '간절함'이란 단어만이 내 귀에 맴돌았다.

 "스님, 어서 들어오세요"

 경북 상주에 있는 도각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님이 한 분 계신다. 이 스님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을 다시 살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상담하기 위해 국회에 마련된 '생명 사다리 상담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는데, 이제는 큰 스님까지 모시고 와서 매주 화요일 저녁에 금강경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분이다.

 "스님,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을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요?"
 작년 연말 이후 처음으로 뵙는 자리인데도 대뜸 내가 스님에게 던진 물음이다. 내가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스님이 행자시절 일기를 모아 출간한 '삐딱선'의 주인의식이라는 글에서였다. 은사스님이 제자인 행자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란다.

 뜻밖의 물음에도 스님은 정성스럽게 스님의 견식(見識) 속에서 답을 주신다. 사실 나의 물음은 해탈을 위해서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장 큰 가르침인데, 주인과 손님으로 나누고 그 각자의 역할이 전제된 주인의식을 갖어야 한다는 것은 집착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에 대한 더 많은 궁금증은 여기에서 해결해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라!

 "스님,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하루하루가 기적인데, 무엇인가에 대한 간절함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너무 허망한 것 아닌지요? 끝이 보이니 이것저것 욕심이 더 생기고, 무엇인가에 간절함을 갖고 싶네요." 이 물음에도 스님은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니 무엇인가 이번 생에 내가 이뤄야 한다는 욕심은 덧없을 뿐이라고 답해 주신다.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스님들이 용맹정진(勇猛精進)하시는 것처럼 나도 간절함을 가지고 살아보겠다고 속으로 항변하면서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지은 '인간의 품격(The Road to Character)'은 부제(副題)가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이다. 부제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삶의 궁극적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적(內的)인 성숙이 필요하며, 성숙해지는 과정이 인간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속세에 사는 내가 성공을 어찌 떨쳐버릴 수 있겠냐마는 그 보다 '간절함'을 가지고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누군가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이 질문에 답을 해보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도 차원이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요. 반백년이상의 시간을 너무 게으르게 아무 목표도 없이 흘려보냈네요. 이제는 하루하루를 '간절함'을 가지고 보내고 싶어요. 그 목표나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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