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금의 절기밥상 - 청국장

2017.12.10 14:47:18

지명순

U1대학교 교수

[충북일보] 청국장 맛이 유별나게 좋다는 김경분 할머니 댁를 지인의 소개로 방문했다. 할머니 댁의 문을 두드리자 자그마하고 자상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오시며 "날이 찬데 얼른 들어와요"하면서 따뜻하게 맞아주시니 친정아버지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한창 점심을 준비하고 계신지 집안은 청국장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점심이 준비되는 동안 잠시 차라도 마시며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할머니는 황급히 부엌으로 사라졌다. 대체 부엌에서 뭘 만들고 계신지 궁금하여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청국장 냄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담한 시골집의 부엌은 오랜 세월 주인의 정갈한 손길에 길들려져 아늑하고 따뜻했다. 선반을 채운 그릇은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윤이 반짝반짝 나고, 행주 수건 하나조차도 눈에 쏙 들어왔다. 마치 할머니와 한 몸인 것처럼 너무나 곱게 부엌이 나이 들었다.

청국장찌개

ⓒ이효선
세월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부엌에서 할머니는 내게 등을 보인 채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할머니 뭘 좀 도와 드릴까요?"하니 "다 되었으니 나가요"하면서 손님은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된다며 한사코 말린다. "별스럽지 않지만 우리 영감이랑 겨울이면 늘 먹는 음식으로 준비 했어요" 하면서 상을 내오시는 할머니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상 가운데는 청국장이 보글보글 끓고, 황금색으로 구워진 고등어, 김구이 그리고 김장김치로 차린 소박한 밥상이다.

콩삶기

ⓒ이효선
냄새만으로는 청국장 맛이려니 생각했는데 막상 맛을 보니 구수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이전에 먹어봤던 어떤 청국장에서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맛이었다. "할머니 청국장 맛이 너무 맛깔나는데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나요·"했더니 "나야 시어머니께서 가르쳐 준대로 평생 만들어 왔지, 할아버지가 워낙 청국장을 좋아하니 말야~." 청국장 만드는 방법은 콩을 푹 삶아서 띄우는데 꼭 솜이불을 덮어서 아랫묵에 놓고 3일정도 지나면 청국장에서 실이 생겨나고 그걸 밖에 하루정도 내 놓아 신선한 바람을 쏘이고 그리고 마늘, 고춧가루, 소금물 양념을 넣고 절구에 찧으면 된다고 하신다.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청국장 만드는 방법이다.

흰쌀밥에 청국장 넣고 비벼 김치 한쪽을 얹져 먹으니 밋밋한 밥과 구수한 청국장, 그리고 아삭이삭 씹히는 김치의 맛이 환상의 궁합이다. 고등어 가시를 발라 두툼한 살을 내 수저 위에 올려 주시는 할머니 자상함이 할아버지 앞에서 왠지 부끄럽지만 덥석덥석 받아 먹었다. 햇김에 들기름을 발라 구웠다는 김구이도 밥도둑이다. 마치 할아버지 밥상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손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청국장 띄우기

ⓒ이효선
할머니 청국장 맛에 빠져 몇 일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였다. 눈발이 날리는 대설 아침,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벌써 마당에 한쪽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검은 가마솥에서는 하얀 김이 힘차게 뿜어져 나오고 구수하게 콩 익는 냄새까지 진동했다. "요즘 세상에 콩을 장작불에 삶아요·" 콩 삶는거 만큼은 장작불에 한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겨울에도 쉬지 않고 장작 패서 쓰기 좋게 해주니께 이렇게 옛날식으로 하지!" 그러고 보니 담장밑에 가지런한 장작이 예술작품처럼 쌓여있었다. 익은 콩을 손으로 문질러 뭉게질 때까지 콩을 삶아 쇠절구에 찟는데 양념 3년 묵은 천일염과 마늘과 고춧가루도 손수 농사지은 것이란다. 완성된 청국장 중에서 금방 먹을 청국장은 숭숭 썬 김장김치를 섞어 비벼 시원한 광에 두고 먹는단다.

청국장

ⓒ이효선
청국장 맛의 비결은 빅데이터로 기능성을 분석해 로봇이 음식을 만드는 시대에도 옛날방식 그대로의 고집으로 만드는 정성이라는 건 알게되었다.

청국장은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가장 질 좋은 형태로 녹아 있고, 칼슘과 철, 마그네슘을 포함한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다. 치매에 예방에 효과있는 콜린, 혈전을 녹이는 나또키나아제는 심장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또한 뇌졸중을 예방하는데도 효과가 있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37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