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금의 절기밥상 - 두부선

2017.11.26 14:14:22

지명순

[충북일보] 새벽부터 핸드폰 알람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이불을 끌어다가 머리까지 덮는다. 추워지니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오기 싫다. "아차! 오늘은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절기밥상을 차려 주기로 한 날인데" 벌떡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목도리를 목에 칭칭 두르고, 장갑 끼고, 모자까지 쓰고 집을 나섰다.

새벽 6시, 두부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뿌연 김이 눈을 가린다. 벌써 콩물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다. 올해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수확한 콩을 15시간 물에 불려 믹서기에 갈아 끓이고 있는 중이란다. 끓인 콩물을 걸러 콩물에서 비지를 제거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신기하기만 한데 공장장님은 정신 집중인지 말이 없다.

순두부

ⓒ이효선
다음은 간수를 넣을 차례, 콩물의 온도를 확인하고 맑은 물 간수를 친다. 뭉글뭉글한 흰 덩어리가 생기면서 물이 맑아졌다. 순두부다. 이 순두부를 틀에 가두고 누르면 두부가 된다. 순두부에 간장양념을 하여 맛을 보니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혀를 감싼다. 금방 만든 따끈따끈한 순두부는 추운 새벽길을 달려 온 나를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3시간 만에 뽀얗고 네모가 반듯한 두부가 완성되었다.

두부

ⓒ이효선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두부를 들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아이들에게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었다는 당당함이 넘친다. 상냥한 어린이집 원장님의 환대를 맞으며 조리실로 향하는 나는 맛있는 두부선을 만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조리사님도 기다렸다며 도마와 칼을 내 주신다.

닭고기 가슴살은 다지고, 두부는 으깨서 물기를 짜고, 잣도 다져 섞었다. 그리고 소금, 깨소금, 마늘, 후추, 참기름으로 양념해 끈기가 생기게 치댔다. 두부 덩어리를 몇 개로 나누어 면보에 놓고 토닥토닥 모양을 만든 다음 채 썬 달걀 지단, 실고추, 석이버섯 고명까지 올리는 정성을 더하였다.

김이 오른 찜통에서 10분간 찌고 한 김 식힌 후 자르면 된다. 100명의 어린이를 위한 점심 준비는 빨리 정확하게 시간에 맞추어 완성해야 하니 손에 로켓을 단 것처럼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이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잘라서 두부선을 완성했다. 추운 날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아이들은 밤이 긴 겨울이면 잠을 많이 잔다. 방학도 있으니 상장 호르몬 분비도 좋다. 전체적으로 심신이 편안한 상태다. 한 겨울을 지나고 나서 봄이 되면 부쩍 자란 키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니 겨울은 아이 키를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두부선

ⓒ이효선
영양관리에 신경을 써 잘 먹여야 키 큰 아이로 키울 수 있다. 잘 먹인다는 말에는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넘치지 않게 먹인다는 뜻이 담겨있다.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소는 단백질이다. 질 좋고 소화 잘되는 단백질로는 두부만한 것이 없다.

두부는 소화율이 95%로 높고, 육류나 생선류와 비교해도 질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우유의 2.6배가 되는 단백질이 들어 있고 다량의 칼슘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알러지나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에게는 더욱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다.

낮 12시, 아이들이 선생님과 노래를 부르며 식당으로 들어온다. 오늘 메뉴는 수수밥, 두부선, 김구이, 사과샐러드이다. 밥 안 먹겠다고 보채는 아이는 눈 씻고 찾아도 없다. 자기 자리에 의젓하게 앉아 "잘 먹겠습니다"를 외치고 숫가락을 든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이거 이름이 뭐에요·" "무엇으로 만들었어요·"질문도 많다. "두부선이라고 하는데 옛날 임금님께서 드셨던 음식이야. 재료는 두부란다" "우아~정말요· 맛있겠다." 하면서 젓가락으로 두부선을 집어 입에 넣는다. 젓가락질이 능숙하고 밥알 하나도 남김이 없다. 옛말에 "내 자식 입에 밥 들어 가는 게 최고로 기쁘다고 하더니" 밥 잘 먹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까지 뭉클한 기쁨이 몰려온다.

난 아이들에게 밥을 해 주었지만 아이들을 나를 하루 종일 웃게 하고 고운 말도 쓰게 했다. 오늘은 내가 천사가 된 것 같은 착각으로 산 날이었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37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