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금의 절기밥상 - 냉이로 차린 식탁

냉이갈비찜, 냉이장떡

2018.03.04 16:53:45

지명순

U1대학교 호텔조리와인식품학부 교수

천둥소리에 땅속의 벌레들이 깜짝 놀라 잠을 깬다는 경칩, 사람도 신입학, 새학년, 신입사원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이다. 시작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낯설은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더군다나 영하·영상을 오르내리는 초봄날씨는 육체적으로 적응하기 힘들다.

한의학에서 내적인 요인(스트레스)과 외적인 요인(환경)이 결합되면 병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니 3월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체력의 저하로 병이 나기 쉬운 달이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애들은 조금만 소홀해도 봄감기, 수두, 수족구병 등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리기 쉽다. 이럴 때는 봄나물이 최고의 영양제이다. 그중 구하기 쉬운 냉이는 비타민, 미네랄은 물론이고 단백질까지 풍부해 면역력성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동의보감에 '제채(薺菜, 냉이)는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고 간기를 잘 통하게 하고 속을 고르게 하며 오장을 편안하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냉이

냉이는 경칩 무렵이 제철인데 뿌리가 굵고 향이 진하다. 햇볕을 받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주색이던 잎이 녹색으로 바뀌면서 맛이 떨어지게 된다. 냉이는 된장국이나 찌개에 넣으면 향기롭고, 나물로 무치면 씹는 식감이 일품이라 잃었던 입맛을 살리는데 더 없이 좋다.··아쉽게도 어린애들은 냉이 맛을 그 닥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냉이에 들어있는 영양소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냉이로 손주를 비롯해 대가족의 건강을 지킨다는 최문연 어머니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영동군 황간면, 추풍령 고개 마루 아래, 쌍둥이 목조주택 2채가 나란하다. 죄측 집에는 아들 내외가, 오른쪽 집에는 딸내미 내외가 살고 있다. 삼대, 열 한명의 가족 중 손주가 다섯이다. 딸, 며느리 둘 다 직장을 다니는 탓에 초등생부터 태어 난지 10개월 된 손녀까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있다.

초등생처럼 몸집 작은 할머니는 손주들 등살에 지칠만도 한데 밝고 행복해 보인다. 냉이를 캐러 뒷동산 복숭아밭으로 향한다. 부드러운 봄 햇살을 받은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린다. 그 사이로 자주빛 냉이가 쫘악 깔렸다. 호미로 땅을 파니 뿌리가 실하게 통통하다. 코끝에 가까이 대니 냉이 향이 바람를 타고 실려온다. 땅 속에서 보물을 캐는 것만 같다. 씨를 뿌리는 수고도 없이 수확이라니 "횡제 중 이런 횡재가 또 어디에 있을까!" 목소리가 종달새를 따라 높아진다. "여기에 있는 냉이는 농약 한번 치지 않는 밭에서 자란 것이니 진짜 무공해"라며 맘 놓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

잡티를 제거한 냉이는 흐르는 물에 살살 비벼 씻는다. 흙을 털어내고 잔뿌리도 제거한다. 찬물에 씻은 냉이는 하얀 뿌리 속살을 드러냈지만 내 손끝은 빨갛게 시려왔다. 할머니는 냉이로 아기 이유식 죽을 쑤고, 간식으로 줄 튀김를 만들고, 된장국도 끓이는 등 반찬 재료이지만 폭 끓인 냉이국물은 목감기에 걸린 가족의 치료약이기도 하다.

냉이갈비찜

이 집에서 봄이면 별식으로 즐기는 '냉이갈비찜'를 만들어 본다. 돼지갈비를 찬물에 하루 밤 담가 핏물을 빼고 가운데에 칼집을 길게 낸 다음 갈비 대 하나씩 떼어 자른다. 양념은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마늘, 생강 등 돼지고기 기본양념에 파인애플, 사과즙, 매실즙까지 한번에 믹서기에 넣어 간다. 아이들도 먹어야 하니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는 맵지 않은 것으로 빨간색 양념국물을 만든다. 손질한 갈비에 넉넉하게 양념국물을 부어 두어 시간 재웠다가 그대로 압력솥에 넣고 밤, 대추, 은행 고명도 올렸다. 뚜껑을 닫고 추가 딸랑딸랑 20분 정도 흔들리자 뚜껑을 열고 냉이를 듬뿍 넣어 한소끔 더 끓여 완성한다. 겨울음식 같았던 갈비찜에 냉이가 들어가니 봄 음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뚜껑 사이로 구수한 고기냄새와 냉이 향이 솔솔 풍겨 나온다. 냄새만 맡아도 침이 줄줄 흐른다. 처음부터 냉이를 넣지 않는 이유는 왜 일까· 냉이를 오래 끓이면 질겨지고 향이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냉이장떡

어른들을 위한 매콤한 냉이장떡도 만든다. 냉이도 부추도 쫑쫑 썰고 매운 고추도 다졌다. 고춧가루와 물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반죽 물을 만든 다음 밀가루를 풀어 갠다. 그리곤 썰은 냉이, 부추, 고추를 넣어 뒤적뒤적 섞어준다. "내가 아는 장떡은 고추장으로 하는데..." "고추장으로 반죽하면 질어서 바삭바삭하게 부쳐지지 않아요!"라고 그녀만의 비법을 공개한다. 기름을 후라이팬에 두르고 핑크빛 반죽을 한 국자 떠서 폈다. 밀가루가 익어 갈 수록 반죽색이 빨간색으로 짙어지고 냉이는 초록색으로 선명해졌다. 지글지글~ 기름 냄새는 지나가는 이웃도 불러 드렸다.··

추풍령 땅의 기운을 듬뿍 먹고 자란 냉이로 푸짐한 저녁식탁이 차려지고 삼대가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나도 그 사이에 끼어 갈비 한대를 뜯는다. 뼈에서 살이 쏘옥 빠진다. 보들보들한 갈비살이 냉이와 환상의 궁합을 이룬 맛이 기가 막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다. 손주가 "할머니 요리가 최고~" 하면서 엄지 척을 한다. "할머니 사랑해~"라고 하면서 뽀뽀 세례도 이어진다. 장모님 장떡 솜씨에 반한 사위는 소주 한 잔을 장인과 나눈다. 며느리는 어머니 덕분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란다고 고마워한다.

봄 향기 가득한 식탁에서 가족 간에 사랑이 피어난다. 몸과 마음에 영양 듬뿍,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면연력이 높아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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