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소기업인의 절규

2015.04.01 13:31:05

최상천

청주상공회의소 부장·경영학 박사

지난 일요일 모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절규하던 중소기업인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습니다. 윤활유가 필요없는 친환경·고효율의 '에어포일베어링'이라는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해 수백조원에 달하는 에너지기계 표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청주 소재 유망 중소기업 대표의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국책사업인 LNG플랜트사업 핵심기술개발분야 총괄을 맡고 있는 등 터보기계 분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대한민국 창조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과학자이자 기술인입니다.

그러던 그에게 금년 1월 갑작스런 변고가 생겼습니다. 미국의 범죄인 인도요청에 의해 구속되어 곧 미국으로 인도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미국시장에서 원산지표시위반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에어포일베어링을 적용한 터보블로워라는 기계를 개발해 미국 14개 주정부에 납품하던 중 납기에 문제가 생겨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제품에 대해 원산지표시규정을 위반했던 것입니다. 이 일로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손해배상을 한 후 미국내 사업을 철수해야 했습니다. 이 때가 2010년의 일입니다.

손해배상을 했기에 모든 일이 종결된 것으로 알고 열심히 사업에만 매진했고 금년 1월 회사업무로 경찰서를 방문한 것이었는데 전격 구속된 것입니다. 2010년 종결된 줄 알았던 원산지표시위반 건에 사기미수 혐의를 추가 적용한 미국 연방검찰이 2012년말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던 것이었습니다. 5년여가 흘렀는데 아무런 통보도 없었고 조사한번 받지 못한 채로 졸지에 사기꾼이 되어 구속된 기막힌 사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회사는 물론이고 대표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기술개발과 해외영업을 총괄하는 대표의 갑작스런 구속으로 회사는 국내외 납품계약과 투자유치가 보류 또는 중지되었고 직원들도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있습니다. 필자가 회사를 방문했을 때 활기가 넘쳐야 할 생산라인은 멈추어 있었고, 남아있는 직원들은 저에게 지켜달라는 하소연만 할 뿐이었습니다.

정부가 2012년 미국으로부터 받은 범죄인인도 요청을 아무런 통보도 없이 묵혀두었다가 이제서야 꺼내어 이리도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 일이 선례가 된다면 미국으로 수출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향후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어찌보면 법절차적으로도 중대한 사안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지켜주어야 마땅합니다. 기술력을 가진 우수한 기업인이라서가 아니라 중대범죄도 아닌 사안에 대해 자국민에게 항변할 기회를 주고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더군다나 국가경제에 큰 기여를 할 유망 중소기업이고 기술인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우리 경제의 뿌리가 되어주며,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치열한 경제전쟁터에서 앞만보고 달려가고 있는 우리 중소기업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말입니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지원정책을 쏟아내며 중소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서면 무엇합니까. 결정적일 때 외면한다면 헛구호에 불과합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보듬어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중소기업을 위하는 진정한 모습 아닐까요?

'무슨일이 있어도 우리 회사가 가진 기술이 외국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켜주세요'라고 하던 이 회사 이사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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