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봉이 김선달 '상표사냥꾼'

2012.09.25 16:22:35

최상천

청주상의 지식재산센터장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세상에 보급되기 시작할 즈음에 도메인을 선점하여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좋은 도메인을 미리 확보하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소위 횡재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업계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도메인 사냥꾼'이라 부르며 많이 부러워 했었습니다. 합법적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사냥꾼이 등장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상표권을 미리 선점해 선량한 상인들을 괴롭히는 상표사냥꾼입니다. 이들은 미리 선점한 상표권을 가지고 마구잡이 식으로 동일 상표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표사용을 중지하라고 경고장을 보내거나,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일전 TV뉴스에서 유명 걸 그룹 '소녀시대' 이름으로 수천개의 상표를 등록한 사람이 인터넷에서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경고장을 보내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쇼핑몰 사장이 아무 생각없이 원피스에 '소녀시대'란 상표를 붙여 판매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독촉장을 보낸 사람은 9가지 분야의 상품과 서비스에 '소녀시대'라는 상표를 등록한 건데, 살아 있는 생선까지 포함해 무려 2,000여 가지 품목이 넘었습니다. 걸 그룹 '소녀시대'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음반 등에 대한 상표출원을 하자마자 이 사람은 같은 상표로 싹쓸이 출원을 한 겁니다.

현행 상표법상 상표 등록은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권리가 인정되는 선출원주의입니다. 이들은 그 점을 충분히 활용해, 어찌보면 교묘히 활용해 자기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적인 헛점을 이용해 직접 상표권을 가지고 사업을 하지 않으면서 동일 상표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용료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사냥꾼'이라는 이름이 걸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 '상표 사냥꾼'들의 행태는 아무리 합법이라지만 상표권 등록 취지와는 너무 달라 보입니다. 상표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를 벗어나 싹쓸이 등록으로 돈벌이를 하는 행위는 분명 시정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허권이 발명을 보호하고, 저작권이 문화창작물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상표권은 브랜드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표권은 제품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이나 예능프로그램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예인이나 예능프로그램 관련 상표는 조금만 유명하다 싶으면 해당 연예인의 소속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선점당하기 일쑤입니다.

소녀시대는 데뷔하면서 연예활동과 관련된 분야(방송, 음반 등)에만 등록을 해 두었는데, 이후 소녀시대가 큰 인기를 얻은 후 패션 및 악세사리 분야에 진출하려고 봤더니 SM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다른 개인이 소녀시대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대응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등록을 해 놓은 탓에 일부 사업분야에서는 소녀시대를 소녀시대라고 부를 수도 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유명한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도 방송컨텐츠와 관련된 것만 KBS이름으로 등록되어 있고, 그 외의 분야에서는 타인이 선점하고 있다고 합니다. 1박2일과 관련된 나머지 숙박업, 외식업 등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상표는 한 개인이 등록했으며, 심지어 그 상표를 라이센싱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표사냥꾼들의 행태를 남의 일인 양 무시하다가는 언제 큰 코 다칠지 모릅니다. 어느날 누군가에게서 갑자기 사용료를 내라고 경고장을 받을지 모를 일이니까요. 사업을 하기에 앞서 내 상호가 혹은 내 상품의 이름이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상호든 상품의 이름이든 내가 만든 것이면 먼저 상표를 등록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래야 확실히 내것이 될테니까요. 소녀시대 사례를 뉴스로 접하며, 그 옛날 대동강 물을 팔아 먹었다는 배짱 두둑한 사기꾼 봉이 김선달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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