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어주다

2025.02.26 18:07:18

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1, 2연이다.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나에게 별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었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 꽃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는 얘기다.

이름은 그 존재를 나타낸다. 사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물은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은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즉 우리 인간에 의해서 지어진다. 만일 이름이 없다면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어서 너와 나를 구분하고 만물을 인식하기 위해 이름을 짓고 이름으로 부름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시골에서 옛날로 치면 초가삼간 정도의 집을 짓고 산다. 내 집의 이름을 지을 필요성을 못 느끼며 10년 넘게 지내왔다. 그러다 언젠가 내 고장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숲체험교실에 체험학습을 한 적이 있었다. 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거기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 도마를 보고 두루두루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무마다 특유의 매끄러운 질감과 나무 고유의 무늬며 곡선미 등에 빠져 눈을 떼지 못했다. 그중에서 박달나무로 만든 타원형 도마에 느낌이 꽂혔다. 손으로 쓰다듬으며 얼굴에 대보기도 하면서 나무의 말 없는 숨결을 느꼈다. 매번 살아있는 나무를 주로 눈으로 바라보는 감상에서 몸이 직접 받는 느낌은 또 다른 맛을 주었다. 그래서 꽤 비싼 값에도 바로 모셔 와 도마로 사용하지 않고 방안에 걸어 놓았다. 한 번씩 눈길을 줄 때마다 이쁜 아이 보듯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다. 무슨 글을 쓰다 우연히 담(湛)이란 글자를 만났다. 湛자는 괼 담, 잠길 침, 맑을 잠 등으로 읽힌다. 여기서 괼 담의 '괴다'는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하다'는 의미를 지녀서 담락(湛樂)이란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평화롭고 화락하게 즐김을 뜻한다. 나는 이 담락이란 말이 마음에 들었다. 또 저수지나 댐에 물을 채우는 일을 담수(湛水)라고 하는데 담락(湛樂)의 의미를 '즐거움을 채우는 일', '즐거움에 빠지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해도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담락을 '즐거움에 빠지는 일'이라고 새기고 있었다.

얼마 전에 책을 보다가 문득 집 이름을 지어볼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 그래 담락당이라 하면 어떨까, '즐거움에 빠지는 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서 말이다, 그래서 서체 중 조전체로 채자하여 글자를 만들어 그 예의 박달나무 도마에 버닝으로 글자를 새겼더니 그럴듯한 현판이 되었다. 이 현판을 내 작은 집 현관 쪽 잘 보이는 곳에 부착하였더니 어느 유명 고가가 부럽지 않았다. 좀 떨어져서 보면 큰 문패로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이름이 보인다. 이름을 보는 순간 이 집이 예전의 생활만 하는 거처가 아니라 하나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래서 김춘수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고 했던가.

모든 이름에는 나름의 뜻이 들어있다. 이름을 짓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시공간에 내가 접하는 것들에게 특별한 자기만의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때때로 불러주면 아마도 무심했던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그래선가 문득 이런 시구(詩句)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 속으로 들어와

깊은 샘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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