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초

2022.09.22 16:13:30

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어느샌가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 들리더니

마지막 피어나는 상사화

호박꽃 다투어 피고

장미는 진지 오래

연꽃은 수없이 피고 지네

빨강인지 주황인지

작아서 더욱 크게 보이는

누가 지었나

유홍초라는 이름

아침 일찍 빨간 나팔을 분다

가을이 왔다고

―장현두, '유홍초' 전문

이른 아침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다 보면 길가에 푸른 잎으로 덩굴처럼 뒤덮인 풀숲에 단연 빨간 색이 눈에 띈다. 그 빨강에 끌려 들여다보면 나팔꽃 모양의 빨강 아니 진한 주홍빛의 쪼그만 꽃들이 문을 활짝 열고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볼 수 있다. 꽃이 아주 작아 전체 길이가 새끼 손가락한 마디 밖에 안 되지만 기다란 화관통 위에는 별모양의 빨간 꽃이 나 한 번 봐주란 듯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있다. 여기저기 수 없는 빨간 별들이 초록빛 하늘에 반짝이는 것 같다.

나팔꽃 속을 들여다보면 안개가 서려 신비스럽게 보이듯 이 작은 놈도 안에 안개 자욱한 신비로운 동굴 같다. 감히 그 속을 들여다보기가 망설여진다. 저 안개를 헤치고 굽이굽이 좁은 길을 찾아 들어가면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가을이면 아프게 다가오는 떠나간 그 님 일까. 아니면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내려와 어서 오라며 기다리고 계실까.

이 앙증맞은 꽃의 이름은 붉은 색이 머문다는 뜻의 유홍초(留紅草)라 한다. 정말 이름 그대로 '붉음'이 머물러있다. 한 번 눈길을 주면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강력히 유혹하는 붉음을 갖고 있다. 같은 종류로 나팔꽃과 메꽃이 있다. 나팔꽃은 유홍초보다 서 너 배는크고 색이 다양하다. 하지만 색깔의 짙음은 유홍초를 따라오지 못한다. 또 다른 하나 메꽃은 연분홍 여리여리함이 순진한 시골 순이 같다. 이 세 가지 꽃 삼총사는 아침 일찍 다소곳이 피어났다가 해가 떠오르면 힘을 잃고 시들어간다. 나팔꽃과 메꽃은 여름 막바지에 화려하고 유홍초는 조금 늦어 더 가을에 가깝기는 하나 이른 아침을 화려하게 힘찬 출발의 나팔을 불어대는 이들 삼총사는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가을의 전령사다.

계절이 바뀌면 꽃들도 바뀐다. 가을의 대표 꽃은 누가 뭐래도 코스모스다. 가느다란 큰 키를 세워 수 없이 많은 분홍 하양 자줏빛 꽃을 자랑하는 코스모스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꽃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가을 속으로 빠진다. 가을바람을 타는 꽃이 코스모스라면 유홍초등 삼총사는 밑에서 소리 없이 왁자한 잔치를 벌이는 꽃들이다. 이들 삼총사는 각기 자기만의 독특하며 흡입력 있는 색깔을 갖고 있어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자존심이 오롯하다.

그렇게 뜨겁기만 했던 여름햇살이 누그러지고 선선한 기운이 살갗을 스치기 시작할 때쯤 유홍초를 봤다면 가을은 이미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유홍초는 가을을 알리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고 작아 더 귀여운, 그래서 더욱 크게 다가오는 유홍초의 매력에 시심(詩心)은 불현듯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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