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노래

2023.05.08 09:36:04

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오월이다. 연둣빛 세상이다. 사월에서 시작하는 새싹들의 위대한 투쟁은 오월에 빛나는 결실을 보여준다. 여린 싹이 뾰쪽이 얼굴을 내밀고는 마침내 겨울을 지나온 딱딱한 땅을 힘차게 뚫고 올라온다. 그 경이로운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살아나려는 근원적인 욕망에서 비롯될 것이다. 모든 생명이 목숨을 이어 살아나려는 힘은 숭고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흔히들 사월을 말할 때 T. S 엘리어트가 쓴 장시 <황무지>의 첫 구절을 인용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은 자라나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여 잠든 뿌리가 봄비로 깨어나고/ 겨울이 차라리 따스했거니'

20세기를 대표하는 이 시 <황무지>는 현대인을 조롱 속의 무녀 시빌과 동일시하여 황무지에서 죽음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고 보았다 ( 유석희 교수/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인용)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황무지 같았다는 20세기 당시 보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문명은 고도로 발달하고 있지만 그 문명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우리 삶의 환경은 매우 나빠지고 있다. 거의 매일 미세먼지, 황사 등이 자욱한 대기는 뿌옇게 흐릿하여 안개 속을 사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황무지 같은 여건 속에서 자연은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잎을 피워낸다. 아마도 나무나 풀도 숨이 답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들은 살아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잎을 내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덕분에 우리는 그런 자연의 은총을 받아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오월은 세상을 온통 푸르게 만든다. 여기도 푸른 잎 저기도 푸른 잎, 푸른색은 인간을 가장 편하게 하는 색깔이다. 마음이 편안하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월을 노래한 노래가 많다. 그 중에서 나는 어린이날 노래가 가장 좋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 노래 1절로 자꾸자꾸 듣고 싶어진다. 밝고 맑은 기상이 넘쳐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다. 오월을 노래한 어른들의 시는 어떤가.

5월의 나무들 날 보고/ 멀리서부터 우쭐대며 다가온다/

언덕 위 키 큰 소나무 몇 그루/ 흰 구름 한 두 오락씩 목에 걸은 채/ 신나게 신나게 달려온다 (중략)

소설가 김동리가 읊은 「오월」이란 시다.

트인 하늘 아래/ 무성히 젊은 꿈들/ 휘느린 가지마다/ 가지마다 숨가쁘다/ 오월은 절로 겨워라/ 우쭐대는 이 강산

청마 유치환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영도 시조시인의 「신록」 전문이다. 두 시 모두 오월이 우쭐대며 다가온다거나 절로 겹다고 탄성을 지른다.

김영랑 시인은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오월」 3~5행으로 오월은 시인의 감성을 빛나게 한다.

최금녀 시인은 여기저기/ 언덕 기슭/ 흰 찔레꽃/ 거울 같은 무논에/ 드리운/ 산 그림자/ 산빛 들빛 속에/ 가라앉고 싶은/ 5월 (「5월」 전문) 오월은 산빛 들빛 속에 가라앉고 싶다 하여 오월 속에 명상적인 침잠에 까지 확장했다. 이렇듯 오월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놀라며 절로 겨워 즐거이 노래를 부른다.

오월은 새로 돋아난 연둣빛 새싹이 초록으로 바뀌어 가며 애기 손 같은 이파리들은 따스한 햇볕과 바람, 물을 한껏 받아 점점 두꺼워지고 단단해진다. 잎사귀들은 윤기를 더해 반짝반짝 빛이 나 마치 사춘기 소녀의 뺨처럼 뽀얀 살결이 된다고 할까. 그래서 오월은 풀이 살아나고 나무가 활력이 넘친다. 마치 눈 감았다 뜨면 검은 세상이 푸른 세상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 같다. 천지개벽이다. 그 생동하는 힘찬 기운은 이를 보는 우리를 활기차게 만든다. 절로 기분 좋게 만들고 충만감에 젖어들게 한다. 오월 봄날 연둣빛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산을 보노라면 어머니 품처럼 마냥 포근히 안겨 잠들고 싶다. 더불어 누구라도 신록을 가슴에 들여 멋진 시 한 편 쓰고 싶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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