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을 가장 간단하게 요약하는 말은 생노병사(生老病死)라고 할 수 있다. 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사람이 반드시 겪게 되는 네 가지 고통이라 했다. 늙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은 분명 고통이지만 태어남도 고통일지 의문이 드나 그 '태어남'으로 인해서 늙고 병들어 죽으므로 사람의 탄생 자체가 '고통의 시작'이라는 논리에 딱히 반박할 마땅한 꺼리를 찾기가 어렵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태어났으니 한 생명으로 살아간다. 나도 이제 '인생칠십고래희'의 단계를 넘어섰다. 내 어릴 때는 60이면 장수한다고 환갑잔치를 거판하게 했었다. 지금 우리 시골 동네에서 60세는 젊은이 취급한다. 대개 70~80대가 주류를 이루는데 옆집 형님은 올해 82세이다. 10년 전 내가 이 동네에 들어올 때만 해도 형님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일했다. 다들 힘들어하는 담배농사, 고추농사 등을 척척 해냈고 건물수리 등 힘든 일도 문제없이 해냈다,
그런 형님도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 담배농사는 진즉 접었고 고추농사도 먹을 것만 한다. 밭도 먼 곳은 안 하고 집 가까운 데만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형님의 모습은 더 사실적이다. 걸음이 느려지고 무엇보다도 일을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한다. 얼굴 모습은 주름살이 밋밋하게 퍼지는 노인의 모습이다. 말도 느릿하다. 젊었을 때 나는 노인들의 그런 느릿한 행동과 근심 어린 표정이 이해가 잘 안되었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기능이 약해지고 병마까지 침입하여 꽃이 시들어가듯 노쇠 되어 가는 현상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형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형수님은 형님 못지않게 그런대로 잘 지내왔었는데 오랜 지병에다 얼마 전 뇌출혈로 심한 병마에 시달리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요즘은 부쩍 쇠약해져 바람 한 번 불면 쓰러질 듯한 모습에 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사람이 이렇게 늙어 병들어 가는구나 생각하니 가슴 먹먹하다.
나라고 그런 과정이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중년 이후 누구든 한 번씩은 온다는 허리디스크로 수술한 지 5년이 지나 이제는 지병화 되었고 살살 달래서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다. 언제 더 악화하여 망가질지 알 수 없으나 이런 병마도 노화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그저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자고 마음을 다독인다.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런 생노병사의 과정을 거쳐 이승을 떠났다.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이름의 종착역을 향해가는 열차를 타고 있다. 각기 다른 시간 다른 색깔의 열차를 탈 수는 있지만 마지막 역은 모두 동일하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며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평소 대하는 사람들이 정이 가고 사랑스러우며 때로 안타깝기도 하다. 아, 저렇게 풋풋하고 이쁜 사람들이 어느 날 안개처럼 사라진다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인가. 또 이 아름다운 나무와 꽃, 산과 들, 그리고 내가 살던 집과 마을 등 모든 인연과 이별해야 해야만 하는 슬픔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해야 하나? 아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지성으로 생의 유한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미리미리 대비하고 준비해서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가 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