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장을 바라는가

2024.09.02 15:05:03

임영택

송면초등학교 교장·동요작곡가

세상엔 나를 좋아하는 사람 반, 나를 싫어하는 사람 반이 늘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하기보다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합을 이뤄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이리라. 계곡을 흐르는 물길이 항상 곧게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굴곡과 격정이 있듯이 인생도 꼭 이를 닮았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친구 녀석이 미워서 그러지 말라며 한판 크게 싸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리 힘이 센 편도 아니었고, 싸움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녀석은 키도 크고 덩치도 있었으며, 싸움도 꽤 잘하는 아이였다. 이 녀석은 여자아이들의 놀이에 끼어들어 방해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행동이 무척 불편했던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친구의 행동을 제지했고, 급기야 싸움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훨씬 더 많이 맞았다. 눈두덩이가 부어올랐고, 입 안쪽이 찢어져서 피가 났으며, 코피도 났다. 퉁퉁 부은 얼굴로 집에 들어가서는 부모님께 혼날까 축구하다가 축구공에 맞았노라는 거짓말로 위기를 넘겼더랬다.

당시에 부모님께서는 나의 그런 얼굴 상태를 보고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아마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무척 속상하고 화가 났으리라. 얼굴 상처로 보아 공에 맞았다고 하는 말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앞으로는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라는 한마디로 그 상황을 넘기셨다. 그땐 그랬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관심이라고 하기보다 도리어 스스로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요즘 학교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부모의 지나친 개입은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빼앗는 행위와 같다. 특히 아이의 학교생활에서 또래 친구들 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폭력 상황이 아닌 이상 아이의 관계는 아이가 감당할 몫이다. 친구와 심하게 다투고 다시 교실에서 마주칠 때 느끼는 어색함까지도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삶이 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불편한 사람과 부딪히고 속상함을 경험하다 보면 마음 근육이 단련되고,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며 그렇게 조금씩 성장한다. 어차피 세상살이가 자신과 뜻이 통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만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또래 사이에 경험하는 일들 또한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고 또 견뎌내야만 한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하고, 갈등 상황에서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맡겨둘 필요가 있다. 이때 부모는 너그러이 기다려야 한다. 다양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아이들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믿고.

부모가 되어서 자녀가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은 부모는 없다. 자녀의 성장을 원하지 않는 부모도 없다. 하지만 아이를 잘 키우는 길은 아이가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아이의 학교생활에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여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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