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가덕중학교에 있다가 철거된 동오 신홍식 선생의 흉상.
[충북일보] 옛 청주 가덕중학교(상당구 가덕면 계산은행로 12) 부지에 있던 동오 신홍식 선생(1872~1939)의 흉상이 철거돼 사라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흉상은 지난 1980년 6월 콘크리트 구조로 제작됐는데 흉상 철거는 최근 현장을 방문했던 더불어민주당 박진희(비례) 충북도의원에 의해 알려졌다.
충북도교육청은 논란이 일자 지난 3일 설명자료를 내 재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흉상 철거가 검토된 것은 단재고등학교 설립 시설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로, 심한 노후화 및 구조적인 문제로 흉상 이전이나 보수 시 파손이 불가피하고 안전사고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은 흉상 철거에 앞서 가덕중총동문회에 공문을 보내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친 뒤 9월 철거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총동문회를 통한 지역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 동상을 철거했으나 지역주민들의 충분한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드리며 향후 종친회, 학교 등과 협의해 교육적 가치가 높은 신홍식 선생 동상을 재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진희 도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홍식 선생님은 충북 청주 가덕이 낳은 민족의 스승이며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라며 "동오 신홍식 선생님의 흉상은 독립정신의 상징물이었다. 그저 흉물스러운 돌덩어리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서 태어난 신홍식 선생은 34세에 그리스도교에 입교한 뒤 목회활동을 하며 충청지역 초기 교회 형성에 큰 공헌을 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명 중 기독교 대표였으며 목사로서는 처음으로 참여의사를 밝힌 인물로도 알려졌다.
체포 후 법정에 선 그는 일제가 제시한 동양화평론의 허구성을 질타하면서 독립에 대한 확신을 피력했다.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2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도 종교운동과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정부에서는 신홍식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편 신홍식 선생의 동상은 청주 3·1공원과 충남 공주기독교박물관에도 남아있다. / 안혜주기자 asj132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