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

2024.02.05 17:04:20

임영택

오선초 교사·동요작곡가

1년 동안 학생자치회 업무를 맡아 아이들의 자치능력과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토록 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모든 활동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어 계획하고 꾸며 실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중에서 학년말에 열었던 학생자치회 장기자랑 축제는 모두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전체 행사의 내용과 방법, 추진 등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맡겨주었다. 홍보 전단을 만들어 전교에 알리고, 참가 신청을 독려함은 물론 진행자 선정과 행사장 꾸미기, 음악 준비 등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분주하게 움직였다. 태권 시범, 음악줄넘기, 악기연주, 합기도 시범, 댄스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참가팀이 결정되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뭐 그리 요청하는 것이 많은지 뒷바라지를 하느라 덩달아 나도 분주하였다.

드디어 잔치가 열리는 날.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한 팀 한 팀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재주와 끼를 맘껏 뽐냈다.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환호성도 끊이지 않았다. 저학년 친구의 음악줄넘기 시연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감동을 선사하였다. 태권무와 합기도 시연에 이어 신나는 댄스곡이 나오자 한 아이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간다. 아이들과 교직원의 함성과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춤을 추던 아이가 갑자기 뚝 하고 동작을 멈추더니 뛰어 내려와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가 묻는 나에게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끝난 거예요."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딱 15초가 지났다. 또 한 팀의 댄스팀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도 15초를 넘기지 않았다.

15초. 대개의 광고가 15초다. 유튜브 쇼츠도 1분 남짓이다. 생각해 보면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클릭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7초를 넘어서면 벌써 지루해지고 짜증이 난다고 했던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아이들이 준비한 아이들만의 축제인 장기자랑 축제가 끝났지만 엉킨 실타래처럼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게 15초 댄스는 너무도 당연한 완성형이었다. 춤을 추는 아이도 관람하는 아이들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상을 보면서 이를 혼란스러워 한 이는 나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짧은 이미지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긴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200쪽에 가까운 동화책을 진득하니 읽어 내려갈 수 있을까?' '40분 수업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까?' 디지털화된 현대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일 텐데, 그냥 '요즘 아이들의 문화라고 이해하고 맞춰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를 '교정해주어야 하는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들의 15초 현상 앞에서 다소 생소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발견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과제도 생겼다. 아이들의 문화 현상을 투영하여 학교에서의 교육활동과 수업 시간을 좀 더 세밀하고 촘촘하게 챙기고 조직해야 하리라. 동시에 끈기 있게 지속해서 수행하는 힘도 길러주어야 하리라. 이것이 곧 아이들의 모습을 보태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길이며, 온전한 성장을 이루게 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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