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 바삐 출근해서 분주하게 하루를 살고 퇴근을 하는, 일상이 늘 비슷한 하루하루의 삶을 살면서 하루의 시작과 끝에 항상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다이어리에 그날 그날 해야 할 일과 한 일, 그리고 일상의 발자취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는 일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조용히 앉아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중요도에 따라 차례를 정해 차곡차곡 정리하고 기록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실행하며 하루의 시간을 채워나간다. 실천 결과뿐만 아니라 실행하는 순간순간 맞이한 감정과 느낌도 빼놓지 않음은 물론이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깜빡 잊고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속상해 메모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교무수첩'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내게는 무척 소중한 기록지였다. 담임 반 아이들의 특성과 신상을 기록하는 면이 있었고, 월별, 주별, 하루의 계획 등을 정리할 수 있는 양식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이렇게 교사에게 특화되었던 교무수첩에는 교육적인 내용들이 담겼다. 그러나 오롯이 교육적인 내용들만 담긴 것은 아니다. 만나야 할 사람과 장소, 퇴근 후 들러야 할 곳, 사야 할 물건, 그리고 지인과의 전화 통화 내용과 하루 삶의 반성을 적는 일기 등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일까지 빼곡하게 적었다. 계획한 일 중에서 그날 그날 실행이 끝난 기록 위에는 여지없이 형형색색의 형광펜이 얹혀졌다. 이렇게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날마다 기록하는 일이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었다. 빈 면으로 넘기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삶의 습관이 돼 나의 역사가 담긴 기록이 해마다 만들어진다. 이렇게 한 권씩 쌓여가는 다이어리는 이제 내게 마음 뿌듯한 보람이요 기쁨이다.
기록은 아무리 별 것 아닌 것이라 취급되는 일이라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며,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삶의 루틴도 생겼다. 이는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인간의 삶은 늘 같은 하루 같지만 날마다 새롭고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은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하루하루가 쌓여 아름다운 삶으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메모하는 습관은 생각을 정리하고 삶을 보다 짜임새 있고 체계적으로 만들어 주는 힘을 가지게 하며 삶을 더욱 풍성하고 알차게 한다.
지나간 날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다이어리만한 것이 있을까? 책장에 켜켜이 쌓인 다이어리는 말 그대로 역사다. 내 다이어리. 여기에는 거창하고 쓸만한 정보나 기발한 아이디어 등 뭔가 특별한 것이 담겨있지 않다. 해야 할 일과 한 일 뿐만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 마음속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감정과 생각들이 담겨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까 그때마다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둔 나만의 감성과 느낌이 스며있다.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명언이나 좋은 글귀도 담겨있으며, 볼품없는 그림과 낙서도 담겨있다. 글이라고 써 놓은 것이 수려하지도 않을 뿐더러 글씨를 또박또박 쓰지도 않았다. '나중에 꼭 써먹을 때가 있겠지?' 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기록하는 삶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내연을 채우고 외연을 확장하는 에너지를 얻었다고 믿기에 나는 오늘도 펜을 들어 나만의 다이어리에 삶을 차곡차곡 챙겨 기록하고 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인생의 뒤안길에서 나만의 다이어리를 한 장 한 장 들춰보며 '잘 살았구나!' 위안을 삼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