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 접이식 문 사이로 아이들의 외침이 들린다. "교장 선생님. 저희 과학실에 있는 돋보기 써도 돼요?" 소리를 따라 운동장 한편에서 아이들을 찾았다. 4학년 아이들이다. "돋보기로 무엇을 하려구요?" "네. 햇빛 모으기 놀이 하려구요." "그래요? 좋아요. 대신 다 쓰고 난 뒤에는 꼭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 주세요." "네."
그렇게 과학실로 후다닥 달려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도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인다. 소곤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목소리가 커진다. 한참을 듣고 있노라니 '말싸움을 벌이는 건가?'라는 오해를 할 만큼의 소리가 뒤엉켜 들려온다. '어찌하고 있나?' 궁금함에 살며시 다가가 보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각각 돋보기로 초점을 맞추어 빛을 모아 검은 도화지를 태우는 놀이를 하고 있다.
처음엔 서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더니 어느새 모두가 함께 한 곳에 집중하여 초점을 맞추고 빛을 모은다. 엄청나다. 금방 연기가 솟아오르고 종이가 타들어 가며 구멍이 난다. 조금 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이제는 모두가 힘을 모아 하트 모양을 만든다. 한 아이는 이쪽에서 또 다른 아이는 저쪽에서 시작하여 하트 모양을 연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그 진지함에 감히 말을 붙이기도 힘들다. 요란한 유선 전화 벨 소리에 서둘러 교장실로 들어온 탓에 아이들이 하트를 다 완성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음악에서 쓰이는 음정 이론에 '딴이름 한소리'라는 용어가 있다. 이른바 서로 다른 음정이지만 아래 음을 반음 올리고(#), 위의 음을 반음 내리면(b), 같은 음이 된다는 뜻이다. 분명 시작은 다른 음정인데, 임시표인 채(#)과 플랫(b)을 붙임으로 하나의 소리를 낸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개성이 다른 각각의 아이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때론 말싸움도 벌이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모습을 익혀가는 모습 또한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 행복하고 바른 삶을 가꾸기 위해서 하나하나 배움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다.
학교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딴이름'의 공간임과 동시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몸으로 체득하며 익히는 '한소리'의 공간이다.
비록 서로 다른 모습과 다른 생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하더라도 같은 마음으로 궁극의 목표인 함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교육. 바로 우리가 학교 안에서 추구해야 할 교육의 모습이다. 타인의 감정과 경험을 진솔하게 이해하고 반영해 주는 공감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까닭이다. 그리하여 서로 다르지만 다름 속에 존재하는 교집합을 찾아 협업하고 확장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일. 우리 교육의 과제이며 비전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