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대로 살아가는 것도

2021.12.23 16:53:35

김희식

시인

눈구름이 하늘을 무겁게 덮고 있습니다. 이렇게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거실 유리창에 맺히는 성에가 길게 흐르며 창틀사이에 스밉니다. 언제부턴가 손끝으로 그리던 그림이 흐려지더니 나뭇가지에 매달리던 겨울이 훅 나에게로 왔습니다. 창밖 집어등처럼 빛을 내는 아파트의 불빛이 위태하기만 합니다. 빠르게 흐르는 세월만큼 사는 게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네 삶은 자동차바퀴에 튀는 눈 녹은 흙탕물로 잔뜩 젖어있습니다. 언제 이 겨울이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의 팬데믹 상황이 이제 좀 잦아드는가 싶더니 다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옵니다. 끝날 줄 알았던 감염 병의 공포는 새로운 변종을 장착한 채 우리에게 더 깊숙이 다가왔습니다. 지금껏 누려왔던 문명에 소외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어리석었습니다. 백신에 취해 다가오는 불행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이 상황 속에서 오래도록 감염 병의 내일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의 오만한 문명도 저물어 갑니다.

어쩌면 이대로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듯싶습니다. 약간은 긴장하고 약간은 불안해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요. 사람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갑니다. 설사 앞으로 마스크 쓰고 사는 삶이 지속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일상으로 정착한다 해도, 그것대로 우리는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위태로움이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관성을 스스로 깨뜨리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세상 사는 사람들 모두다 조금씩 아픕니다. 그리고 외롭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갖는 유한자로서의 모습입니다. 살며 우리 사는 모습이 경쟁이 아닌 위로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누구나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면서 그 무엇에 매달리거나 후회하며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꿈을 꿉니다. 그 꿈이 아무리 허황할지라도 내일이라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게서 바라보는 희망의 꿈들을 간직하며 지금껏 살고 있는 것이지요.

언제부턴가 앞으로 내가 넘어야할 것들이, 나의 미래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아졌습니다. 무엇을 위한답시고 휘젓고 다니는 지난날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다만 우리가 함께 누리고 사는 지금의 모습에 조금은 기대서, 조금은 착하게 살아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살고 싶을 따름입니다. 손끝에 보이는 작은 별 하나를 푯대삼아 지구별 여행을 재미있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라는 존재가 아무리 작더라도 스스로 담지한 생명의 운행을 착실히 이행하는 것입니다. 하찮은 나에 대한 존재의 위로이기도 하지요.

한없이 움츠렸던 날들이 산처럼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장이 뛰고 눈 덮인 저 너른 초원에 생명이 숨 쉬고 있는 한 우린 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말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뭐 어떠냐고, 괜찮다고. 서로의 손 내밀어 따뜻한 온기를 전합니다. 들판의 생명은 저 스스로 속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잎이 땅에 닿아 벌레들에게 넉넉히 제 몸을 내어주고 난 후 알속을 채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은 늘 이렇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눈 내린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꽃들이 타오릅니다. 몸 속 구석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늘을 향해 부리를 내미는 새의 날갯짓이 우리를 향해 온몸으로 솟구칩니다. 새로운 세상의 속살을 가만 바라봅니다. 살아있음의 꿈틀거림이 낮지만 힘 있게 일어섭니다. 함께 바라보는 하늘이 참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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