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모래 한 점인 나

2016.08.03 14:03:32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누구나 살며 다들 떠남에 대한 설렘을 안고 삽니다. 그것은 지금의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커지는 것이지요. 또한 본래 인간은 머물며 살던 그런 동물이 아니었기에 머묾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떠남에 대한 설렘은 크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 글이 나가는 날 쯤에는 나는 실크로드의 멀고 먼 길 한가운데서 뜨겁고 매서운 먼지바람을 맞으며 나를 찾는 허망한 몸부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젊은 시절 한없이 돌아다니며 삶의 자양분을 충전하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떠났지만 그 것이 일관계로 인한 공식적인 일정을 수행하는 또 다른 업무의 연속이었지 진정 나를 돌아보고 생을 바라보는 그런 여행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크로드 여행을 결정하는 과정이 힘들었지 막상 떠난다는 결정을 하고나니 모든 것이 다 편안했습니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잡던 끈도 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로인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억겁으로 흐르는 장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 하찮은 미물보다도 더 작은 존재인 나를 봅니다. 살며 서로가 보아온 것은 그냥 보인 것을 본 것이고 내가 아는 것을 안다고 느낀 것뿐이었습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안다고 했던 것은 그냥 보인 것에만 집착했던 것이고 그 이면의 지층을 보지 못한 것들이었지요. 함께 아파하고 인정하지 못한 추한 모습이었지요. 나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떠나며 단숨에 알았습니다.

그럴 줄 알면서도 떠난 길이었습니다. 허세였지요. 나의 하찮은 분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돌이켜보면 저 까만 사막의 별처럼 쏟아지는 눈물이 납니다.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에 배인 위선을 씻으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산다는 게 어차피 순간순간 미지에의 여행이고 그 여행의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과의 업을 짓는 것이지요. 처음의 설렘과 이 작은 여정을 통해 나를 엿보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이 인연의 동반자들에게서 내가 호사할 덕을 짓기도 하지요. 삶의 길에 함께 하는 사람이 없을 때 얼마나 외로울까요. 이 여정에 함께 서녘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서안에서의 일정을 마치며 이제 내일부터 먼 길을 가야 합니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겠지요. 병마용에서 어마무지한 장관을 보며 끝없는 인간의 욕망과 그 굴레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며 얼마나 많이 자기에 대한 처절한 반성을 하며 살까요. 어쩌면 서쪽으로 한없이 가는 이번 일정은 실크로드 대상들의 길을 쫓아가는 그런 것이 아닌 내 생의 반성의 길이기도 하지요. 천산북로를 따라 우루무치로 향하는 길은 또 다른 설렘을 갖게 합니다. 천수와 돈황의 사막에서 밤새워 짐승의 울음을 울고 싶습니다. 투루판에서 절절한 노랫가락을 쏟아 내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어머니인 초원의 대지에 입맞춤하렵니다. 진정 위대한 광야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이번 여행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요.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여행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막에서 모래 한 점으로 존재하는 나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어쩌면 이런 것을 느끼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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