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로 만나는 사람처럼

2016.08.17 14:37:40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꿈을 꾸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앞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길을 잃었다. 지칠 때까지 사막을 걸었다. 쓰러져 누운 내 몸 위로 별이 쏟아진다. 바람이 분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불빛이 보인다. 그 곳은 명사산 꼭대기에서 바라 본 월아천의 모습이다. 가없는 눈물이 흐른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 총을 겨눈다. 그리고 꿈을 깼다.

13박 14일의 실크로드 여행을 마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잠을 잤다. 5천㎞를 넘게 달려야 했던 이번 여행에서 40도를 넘나드는 기후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이동거리, 기차에서의 숙박, 바로 이어지는 일정으로 숨을 쉴 수 없었다. 서안에서 시작하여 천산산맥 길을 따라 감숙성으로 향하는 길인 천수로 갔다. 이곳에서 난주, 돈황을 거치고 다시 유원, 우르무치에서 이닝으로 나라티의 공중초원과 싸리무 호수를 보았다. 그리고 이닝에서 우르무치로, 서안을 거쳐 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척박한 타클라마칸 사막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지나 천산산맥의 북로를 지나가는 험한 여정은 그것이 동서양의 문명을 이어나갔던 상인들의 여정을 좇아가는 것으로의 의미도 있지만 더불어 나의 한계를 실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진정 실크로드의 팍팍한 일정 속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인가. 길을 가면 갈수록 갈급하게 나를 옥죄인 것은 병마용의 거대함 속에 잠겨있는 백성들의 비명이었고 초원을 달리는 몽골군의 말발굽 소리였다. 막고굴에서 혜초와 현장의 고뇌를 보기보다는 무너진 벽화의 덧칠만이 보였다. 고성들의 퇴락한 흔적들에서 학살의 잔인한 피를 보았다. 어쩌면 이 길은 실크로드라는 문명의 교역로라기보다는 정복의 길이었고 학살의 길이었다. 아직도 우루무치에서는 끝나지 않은 한족과 위구르족의 갈등으로 살벌한 긴장이 머문다. 사막에 흐르는 강의 또 다른 이름인 눈물만큼이나 아픈 이야기다.

여행을 통해 나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흔히들 여행은 길에서의 만남이고 도전이라 말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길 위의 사람들과 그들이 밟고 살아가는 땅의 소중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여행에서 으레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여행은 만남과 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뒤돌아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지 나를 찾는 행위는 아닌 것이다.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제껏 나는 무얼 보았는가. 자신을 끝내 붙잡고서 무슨 세상의 아픔을 느낀다는 건지 참으로 불쌍한 존재이다. 그동안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본 신기루와 같이 내가 갈구하는 것만 본 것이다. 그동안 내가 들은 것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은 것이다. 그동안 살며 내가 본 것은 본 것이 아니라 그 현상만 본 것이다. 나는 종종 자신을 부정하면서 까지도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어 왔다. 바보 같은 모습이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혼자 태어나 살아가고 그렇게 죽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길 위에서 죽는 것이 행복이라 말한다. 우리는 아마 내일도 그렇게 살아왔던 대로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다만 어제의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아닌 여행을 통해 오늘 새로 만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할 것이다. 어제인 나보다 조금은 나아진 나를, 많이 가벼워져 있는 나를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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