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꽃이 지네요

2016.05.11 13:31:00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산다는 게 참 외로운 여정입니다. 열심히 살아왔건만 뒤 돌아보니 부끄러움뿐입니다. 요 며칠 별 쓸데없는 일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리석은 욕심들로 인해 자꾸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고단한 밥 수저의 무게가 서러워집니다. 나이 들면 들수록 그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창밖에 자박자박 비가 내립니다. 비 내리는 창 너머로 수많은 불빛들이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불빛들에 번쩍이며 지난 기억들이 피어납니다. 살며 항상 명치끝에 매달린 묵직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살다보면 그런 안타까움이야 다들 있기에 마음속으로만 가졌지 표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습니다. 어쩌면 저 혼자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진정 잘난 것 하나 없는 빈껍데기로 살면서 정작 사랑해야할 것들을 많이 놓치고 살았습니다.

이번 연휴를 이용하여 누이동생이 있는 부산엘 다녀왔습니다. 참으로 먼 길이었습니다. 그냥 훠어이 다녀오면 될 것을 무에 그리 바쁘다는 핑계가 많았던지. 자주 근처를 다녀가면서도 따뜻한 전화 한 통 제대로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동기간에 먹먹한 정들이 나이가 들수록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팍팍하게 살며 흐르다 저렇게 머무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 싶습니다.

어렸을 적 참으로 먹을 것 없어 배곯던 기억들이 지나갑니다. 그래도 참으로 넉넉하게 웃을 수 있던 날이 많았습니다. 길가 가로에는 하얀 누이 같은 이팝나무 꽃이 서서히 지고 있습니다. 사무실 뒷마당에 쌀알을 펑펑 터뜨리던 이팝나무도 바람에 흔들립니다. 참으로 짠한 이름의 나무입니다. 지는 이팝나무 꽃을 보며 아파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이 나무는 입하 무렵 꽃이 핀다하여 이팝나무라고도 하고, 나무에 핀 꽃이 하얀 쌀알 같다하여 이팝나무라고도 하지요. 흉년이 들어 제대로 먹지 못해 죽은 아이를 하얀 쌀과 함께 묻었더니 무덤가에 나무 하나가 자라 하얀 꽃이 피었다는 전설도 있고, 가난한 집에서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 구박에 못 이겨 목을 매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피어난 것이 이팝나무라는 전설도 있습니다.

흰 쌀밥에 관한 전설을 가진 게 또 있습니다. 며느리밥풀 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꽃은 여인의 붉은 입술에 두 알의 밥풀을 머금은 모양을 가진 꽃으로 참으로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젯밥을 짓다 먹은 밥 알 두세 톨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부지깽이로 맞아 죽었다는 얘기나, 구박이 심해 굶어 죽었다지요. 그 며느리를 뒷동산 소나무 아래 묻은 후 이듬해 며느리 입술 닮은 진분홍 꽃이 피어났는데 이게 바로 며느리밥풀 꽃이랍니다.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마다 이토록 서러운 얘기들이 수북이 피어 있습니다. 다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설운 꽃에 관한 이야기에 마음을 실었습니다. 글을 쓰며 매번 번듯한 얘기만 한다는 게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를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 주변사람 하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무슨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앞으로 더욱 뒤돌아보고 사랑하며 살렵니다. 이팝나무 꽃이 지네요. 까짓 없으면 없는 대로 넉넉한 마음으로 살면 되지요. 숨 한번 크게 쉬지요. 그러면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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