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이 아름답다

2019.07.11 17:00:26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팀장

마른장마가 한차례 지나갔지만 아직 해갈은 되지 않았다. 올해도 작년만큼 더울 것 같다.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지난여름의 폭염 속에서 많이 힘들었고 아팠다. 자신에 대해 채찍질을 하면 할수록 더욱 가슴이 공허했다. 저 스스로 열을 식히지 못한 채 많이 힘들어했다. 막막했다. 길이 산 너머로 지워지고 어둠에 밀려 흔들리는 나를 본다. 나는 어디 없고 생존의 두려움에 겁먹은 작고 힘없는 한 사람이 서 있다. 그 어둠 속에서 저 혼자 아파했다.

살면서 나를 구속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갈망했다. 어느 상황에서건 스스로 결단했고 내 것이 아닌 것에 크게 욕심내지 않았다. 당당하려고 노력했고 꿈을 꾸며 항상 떠남을 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것들을 외면할 때가 많아진다. 나 스스로가 어디 한 곳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요즘 자꾸만 머무는 것에 익숙해진다. 나이가 든 것인가. 용기가 없어지는 것인가. 내 가슴 속 요동치는 생명의 기운들이 이제 조금씩 시들어지고 있다.

나는 잘살고 있는가. 나 스스로 살아있음의 소리를 질러본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살아가면서 나약하고 어리석은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희망이라는 것은 현실의 끈을 발견하고 그것을 좇는 것일진대 그 끈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점점 쓸쓸해지고 외로워진다. 나 스스로가 떠남을 잃어버리고 엉거주춤 멈추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스스로 절망할 때마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몸과 마음의 녹슨 멈춤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소리치고 싶다. 바로 그것이 떠남의 길이리라.

뒤돌아보면 매년 이맘때면 여행을 떠났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실크로드의 막막한 사막에서 별을 보며 길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쿠바의 혁명광장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멕시코 피라미드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점령자들의 잔혹한 학살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 울기도 했다. 그러나 떠남으로 나를 찾기는 어려웠다. 여행이라는 것이 자아를 찾아 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조차도 의도된 도피의 길인지 모른다. 스스로 여행사의 상품이 되어 떠나는 길을 인생이니 새로움이니 하는 것들로 포장하는 것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스스로 떠남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었다.

어쩌면 여행은 일상에서의 자아에 대한 막막함을 자연과 미지의 세계에서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리라. 타인의 시각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해방하는가는 떠나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잘 떠난다는 것은 잘 본다는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보고 이해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살며 가끔은 익숙한 일상에서 떠나 자신을 올곧이 보아야 한다. 떠남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을 더 올바르게 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자 그림이 아니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임을 단번에 알아보는 어린 왕자의 눈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떠남이 아름답다.

생텍쥐페리는 말한다. 사막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어쩌면 인생이란 끊임없이 출렁이고 자기만의 선택으로 후회하기도 한다. 그 모두가 어딘가 숨겨져 있는 자아라는 샘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리라. 새 세상에 대한 긴장감과 약간의 두려움은 늘 가슴을 뛰게 한다. 긴장과 감동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따분하고 무기력한 모습인가. 해지기를 기다려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산다는 것은 늘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선택하고 산다는 게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올여름 마음의 별 하나를 밝히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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