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에 취해 피카소를 생각한다

2016.03.16 14:51:53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완연한 봄이다. 우리는 봄을 기다리며 낭만과 도전, 그리고 새롭고 따뜻한 시선의 세상을 기대한다. 그런 환장할 봄날에 바보스럽게 몸살이 걸렸다. 햇살 가득히 내리쬐는 양지에서 해바라기 하지만 몸 속 깊이 스며드는 아린 떨림은 피할 수 없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오십 중반을 바라본다. 정작 오늘의 봄이 작년의 봄이 될 수 없듯이 오늘 나는 젊은 날의 내가 아님을 차가워지는 손끝을 부비며 알게 된다.

이런 봄날, 세상은 온통 전쟁판이다. 북한 핵실험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냉전 구도는 이제 사드로 대변되는 전쟁놀이가 일촉즉발 상태이고, 정치권에선 총선을 위한 공천의 눈먼 칼부림이 조폭들의 싸움 같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불가침 영역이라는 바둑에까지 기계의 습격이 이루어진다. 훗날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가슴 칠 지도 모를 오늘의 현상에 대하여 떨리는 가슴으로 지켜본다. 두렵다. 그러나 한 인간인 이세돌에게서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맞서 싸우는 희망을 본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그림이 있다. 1937년 그려진 이 그림은 스페인 내전으로 인한 게르니카라는 작은 도시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와 그로인해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와 황소, 말들의 비명,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림 상단에 있는 커다란 눈이 분노하며 바라보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 중 이 게르니카와 비견되는 '한국으로부터의 학살'이 있다. 이 그림은 무장된 기계인간들의 총구와 칼끝 앞에서 맨몸의 여인들이 어린 아이를 잃고 우는 모습과 임신한 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여인, 그리고 그런 엄마 곁에서 땅 장난하고 있는 어린 아기가 그려져 있다. 1951년 그려진 이 그림은 남과 북의 이념 싸움이 아니라 기계와 권력에 의한 이 땅 한반도에서의 인간사냥이 그려져 있다.

이 '게르니카'와 '한국으로부터의 학살'은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는 한 세상의 어떤 곳, 어떤 장소라도 전쟁과 파괴가 일어나고 절망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일상적인 인식의 차원과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의 참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예술가의 시각은 그래서 다른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현상만을 재해석 하려는 일상적인 시각의 한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태어나면서 교육되어지고 규정되어진 의미를 한꺼번에 부정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간 산업화 시대에 살며 먹고 살기위해 노예적 삶을 살아 온 우리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거나 삶의 존엄을 역설한다는 것이 남의 일같이 보일 수 도 있다. 그러나 피카소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동양의 한구석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다른 시각으로 이해한다.

진정 예술이란 것이 무엇인가. 그 것은 삶에 있어서의 감동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서로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 내는 지난한 작업이다. 예술은, 예술가는 세상의 변화와 삶의 존엄을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공존하는 삶을 노래하고 인간적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것, 비록 약간은 어눌하지만 그것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예술인 것이다.

피카소는 혼란과 야만의 시대에 예술가의 역할에 대하여 역설한다. "예술가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일에 무관할 수 있을까. 회화는 아파트나 치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봄날, 햇살에 취해 바라보는 세상이 편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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