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의 터전, 지역문화

2017.11.30 13:33:58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하늘이 낮은 중저음으로 바닥에 깔리고 오늘도 바삐 바람에 휩쓸려 길을 나선다. 매번 희망과 기대로 길을 나서지만 귀가하는 내 그림자 따라 뚝뚝 한숨만 길 위에 던져지곤 한다. 살며 이렇게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젖어드는 슬픔을 애써 외면하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같은 날, 그래서 더 깊숙이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을 느끼는가 보다. 바람에 떠는 단풍을 보았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놓은 산수유며 플라타너스 저 편에서 낡은 단풍이 힘겹게 매달려 있다. 초겨울 늦은 저녁 불협화음으로 달리는 거리에서 마음만 산란하다.

나는 이제껏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내가 꿈꾸며 살아온 것은 무엇인가. 문화예술로 제대로 된 세상을 그리며 젊음을 불태웠건만 결코 변하지 않는 거대한 것들과의 싸움에 서서히 지쳐간다. 시간이 갈수록 행정에 포위되고 관료의 하수로서의 역할만이 요구된다. 결과만을 갈구하는 현 체계 안에서는 모든 정책이 졸속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각으로 진지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공유하며 구습들을 고치려하지만 자본주의적 경쟁구도를 벗어날 수 없는 지금의 체계 안에서 문화예술에서의 분권과 자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허망할지 모른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팔 길이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문화예술지원정책의 핵심적 명제인데 원래 그 뜻은 사라지고 예술인들을 자본과 제도 안에 가둬두는 형식을 대변하고 있다. 팔 길이 근처에 예술가들을 두어 언제든지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것이 무슨 돈이 되고 권력이 생긴다고, 알량한 돈 몇 푼 쥐어주면서 E나라 도움이니 정산이니 평가니 하면서 예술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예술을 하는 것보다 기금을 신청하고 정산하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들이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 것이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가장 순수하고 창조적이어야 할 예술가들에게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힘들어지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쩌면 그것이 적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예술 현장은 무척이나 열악하다. 특히 지역은 더 하다. 어쩌면 지역에서 하는 우리들의 문화예술행위가 전문가들 눈에는 성이 차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마추어 모습들로 거개가 존재하고 약간은 학예회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그들의 열정조차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과 자신의 삶을 문화예술로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그려진 것은 예술 그 자체만은 아니다. 그러기에 지역문화 정책은 이러한 못난 것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지역속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극복하려 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고민을 하여야 한다.

지역에서의 문화정책은 문화예술로서 지역의 삶터를 얼마만큼 행복하게 만들어가게끔 할 것인가에 있다. 그것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자치와 주민들의 참여를 전제로 이룩될 수 있는 것이며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상호간의 신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은 예술의 수월성에 의거하기 보다는 문화 복지적 관점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문화예술이 우리가 실현시켜 나가야 할 꿈의 터전이며 이를 이룩하기 위한 삶의 공감대와 정체성을 엮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에서의 삶과 문화예술의 결합을 통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해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지역문화 정책의 명제일 수도 있다. 삶과 예술의 터전인 지역문화가 우리 국민 모두가 실현하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모습이며 함께 공유해야할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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