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빚는 마음

2021.03.03 18:04:58

김춘자

수필가

경기도 이천 사기막골에 가서 도자기 구경을 하기로 했다. 관광안내소에 들러 다양한 정보가 담긴 팸플릿을 얻은 후 도자기 공방으로 향했다.

남편은 백자 달항아리를 보며 행복해했다. 달항아리에서 느끼는 감성은 명주 두루마기 살갗에 닿는 것처럼 느껴져 할아버지 생존하셨을 때 모습이 떠오르게도 한다. 대문 안으로 부드럽고 차름한 명주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외출하셨다가 돌아오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보게 되면 도자기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과정과 땀방울의 결정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고향 뒷동산에는 백토로 된 조대흙이 나오는 곳이 있었다. 공작 시간이 되면 조대흙을 찰지게 치대고 반죽하여 토끼와 공깃돌을 만들었다. 그것을 그늘에서 말려도 실금이 생겼는데 그러면 조대흙을 묽게 풀어 실금 간 곳에 덧칠하고 또 덧칠하다 보면 매끈한 공작물이 되었다. 어머니의 립스틱으로 토끼의 눈을 빨갛게 칠하면 깡충거리고 뛰어다닐 것처럼 생기있는 토끼가 완성되었다.

사기막골에서는 도자기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체험 학습장으로 이곳에 온 적이 있다. 물레를 직접 돌리고 작은 컵을 만들던 진흙 묻은 고사리 같은 손이 생각난다. 기본형으로 만든 컵에 유치원 이름을 쓰고 하트를 그려 넣었던 그 컵은 가마에 구워 일주일 후에 유치원으로 보내왔고 지금은 결혼한 아들 집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청자의 은은한 색은 숫처녀의 부끄러움을 닮았다. 뉴질랜드에서 보았던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자연 물결 속의 청자의 은은한 빛이 녹아있는 듯 아름답던 셀렘이 이곳에서 다시 느껴졌다.

백자를 닦을 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심성 같다고나 할까· 사람에게는 성선설과 성악설 고대 중국에서 주장되었던 도덕 사상의 기초가 되는 인간성을 이해한 내용이 있다. 성설설은 인간에게는 천성적인 양지양능이 갖춰져 있고 인의예지의 사단 도덕의 근본을 갖춘 선한 본성을 의미하는데 백자가 꼭 선한 본성을 가진 선인처럼 단아하다.

도자기를 빚는다는 것은 성선설에 성품만 지닌 신생아처럼 도공의 마음도 그러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듯하다.

불가마에서 갓 나온 백자를 매의 눈으로 살피던 도공은 망치를 든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파편들이 부서져 내린다. 도공의 땀이 파편 속에 머무는듯한 순간 도공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안타까운 눈빛을 보았다. 한 탯줄에 태어난 형제자매도 성격이나 모습이 다르듯이 자기만의 손동작으로 각기 다른 도자기의 형태가 빚어진다. 노력 여하에 따라 제각각 발전하여 인간문화재가 되기도 하고 평범한 도공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공방을 돌아보고 예쁜 백자 화병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욕심내던 백자 달항아리도 포기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음을 알아차리고 서로 쳐다보며 웃는 여유가 생겼다.

글 짓는 것도 역시 도공과 다르지 않다. 주제 작품성 철학 문장력 정감이 있어야 한다. 수많은 책을 읽고 글을 짓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며칠 동안 쓴 글이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글자판을 지운다. 흠을 발견한 도공이 정성 들여 구운 도자기를 망치로 깨트리는 것과 흡사하다. 흡족한 글 한 편 완성하고 나면 가슴이 설렌다. 아름다운 도자기 역시 도공의 수 없는 수련의 과정이 담겨있고 땀이 맺은 결실일 것이다.

순백의 달항아리처럼 순수하고 설레게 하는 나라!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가 결이 고운 도자기를 빚는 도공처럼 순수한 모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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