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일기장

2021.01.10 16:28:11

이정희

수필가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1월도 벌써 열흘인데 아직도 어설프게 새해 같다. 누가 나이를 물어도 얼결에 작년 나이를 들먹인다. 무엇 하나 속 시원히 끝낸 것도 없이 2021년을 맞고 보니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교차되는 등 묘하게 착잡하다.

1월을 나타내는 'January'도 야누스 즉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나왔다. 야누스는 두 얼굴 가진 로마의 신이다. 보통 이중인격자를 뜻하는데, 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야누스 신이 가장 먼저 제물을 받으면서 새해 들어 첫 달 1월이 되었다.

살면서 행복이니 불행도 바탕화면은 하나이다. 행복은 당연히 행복으로 그릴 수 있고 불행 역시 행복으로 바꿔 그리는 거다. 어려울 때도 뒤집어서 보는 야누스적 인생관이다. 행복의 뜰로 가는 문 아이디는 슬픔이고 행복이 꽃피는 비밀의 화원은 눈물로 얼룩진 지문이라야 따고 들어갈 수 있다.

우리 가끔 별 것도 아닌 불행에 주저앉는다. 불행도 행복인 듯 찾아 와서는 잠깐 새 뒤집어지곤 했지만 가시야말로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바다의 눈물 진주가 아픔 끝에 만들어지듯 불행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어느 날 조개 속에 모래 알갱이가 들어갔었지. 그때부터 갑자기 아파서 쩔쩔매기 시작했을까. 방법은 없고 우선은 이물질을 내어 조금씩 굴려나갔다. 오래 오래 고통을 견디고 이물질을 만들어 모래알 싸고 싸면서 진주를 만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끌어안고 있던 비밀이 빛나는 보석의 상징으로 된 거다.

살면서 모래알 같은 이물질은 힘들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고통으로써만 만들어진다. 방법을 찾다 찾다 막을 씌우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창출한다. 누가 봐도 시적인 발상이었으나 배후에는 아픔이 도사렸다. 말은 고통이지만 구름 속에서도 태양은 빛나고 있었다. 조개는 깜깜 바다에서도 진주 환상 때문에 참는다.

세상 또한 야누스의 그것처럼 생각하라는 뜻이었겠지. 비바람 몰아쳐도 곧 지나가리라. 갑자기 꿈이 보인다. 진주는 아름다움 자체였으나 그만치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인생 또한 겉으로는 아픔이고 시련이었으나 그게 곧 인격의 출발선이다. 덧없고 후회스럽고 그렇지만 훗날을 보고 참아야 하리. 기쁨의 바탕화면은 아픔이고 극복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불행의 나무에 달리는 행복을 보는 것 같다. 행복이 사라진다고 하지만 그 순간 들어오는 소망을 놓쳐버리는 것도 야누스적 한계이다. 화가들도 그래서 야누스의 얼굴을 각기 표현했을까. 야누스의 얼굴은 이중인격도 되지만 힘겨운 삶에 용기를 주고 소망의 횃불로 타오르곤 했다. 힘들어도 괜찮은 듯 살려면 아름다운 추억과 무지개 빛 꿈도 동시에 봐야 한다면서 그렇게.

파도가 칠수록 물보라는 구슬처럼 반짝이고 모진 폭풍일수록 하늘은 더욱 푸를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다. 절망의 골짝에서도 희망의 보석을 찾는 거다. 힘들고 눈물이 나는데도 웃어 보이는 것은 야누스의 뜻이 위선일지언정, 힘들 때도 능히 견딜 테니 나쁠 게 없으리라는 위로의 발상이다. 야누스적 메시지가 신년 1월부로 적용되는 것도 보이지 않는 희망에의 암시였기 때문에.

가끔 야누스의 일기장을 훔쳐본다. 무심히 펼치면 그렇게 적혀 있었다. 행복의 이면에도 불행은 도사려 있고 그것을 볼 줄 알아야 제대로 산 거라고. 세상도 드러난 게 전부는 아니었다. 순간순간 어둠의 베일 때문에 우리 얼마나 슬퍼했던가. 절망이 하나면 거기 빛나는 꿈과 소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행복은 고난의 성벽에 휘날리는 깃발 같은 거였다. 1월의 상징 야누스는 이중인격이지만 어려울 때도 희망을 꿈꾸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겨울에도 봄을 느끼는 사람은 얼음장 밑으로도 따스한 흐름을 듣는다. 그것을 인생의 방정식에 대입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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